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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Oct 31. 2023

어떻게 게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결국 아이는 벌겋게 달아오른 손을 침대 아래로 떨궜다.

“죄송해요, 엄마”




고학년 아들과 엄마 사이에는 두 가지의 딜이 있다. 첫째는 하기로 한 공부 혹은 숙제, 둘째는 스마트폰. 이 두 가지가 얼마나 원칙대로 잘 지켜지느냐에 따라 거실 온도가 결정된다. 아이가 결국 잘못을 시인했던 그 때는 요즘만 같아라 싶던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거실은 체감온도 23도의 딱 좋은 시절이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오랜만에 패밀리 링크에 들어가서 아이들 휴대폰 사용 시간을 확인해 보다 큰 아이를 불렀다.  

“김 당근! 이리 와봐봐! 너 요즘 하루에 휴대폰 얼마나 써?”

“엄마가 열어준 딱 30분만 쓰죠. 더 어떻게 써요?”

“그런데 왜 지난주에는 30분에서 조금씩 더 쓴 걸로 나올까?”

“가끔 제가 휴대폰을 다 안 썼는데, 사용 시간이 초과되었다고 휴대폰이 잠길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거랑 비슷한 게 아닐까요?”

“그런가?”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쿨하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큰아이의 모습을 더 유심히 살펴봤어야 했다.



그러고는 몇 주 후.

“엄마! 저 수학 숙제 다 했어요. 그리고요, 휴대폰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휴대폰이 잠겼어요. 15분만 더 열어주세요”

“알았어”

엄마의 마음을 녹이는 마법의 말 '숙제 다 했어요'에 휴대폰 시간 15분을 더 열어주는 내 손가락이 다정하기만 하다. 그러고 나선 갑자기 지난주 휴대폰 사용 시간이 궁금해진다.



‘이건 뭐지?’

월 화 수 목 금 휴대폰 사용 시간 그래프의 키가 쑥 커져있다. 30분 하한선을 가뿐하게 넘어서 쑥쑥 자라나 있었다. 유독 높이 솟은 그래프를 보니 2시간에 육박했다. ‘앱의 작동 오류’가 아님이 분명했다. 설마.. 혹시?   





평일 휴대폰 사용 가능 시간은 30분이건만, 그래프의 키는 높기만 하다.


큰 숨을 들이켜 내쉬고 아이를 불렀다.

“김 당근, 엄마가 정말 혹시나 하고 물어보는 건데… 너 혹시 패밀리 링크 앱에 손댔니?”

“아니요!” 아이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견고함이 묻어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엄마는 이 기록이 이해가 안 가서 그래. 금요일은 무려 사용시간이 2시간이야. 이거 봐봐”

아이를 옆에 앉혔다. 가장 높이 솟은 금요일 그래프를 누르고 앱 관리 항목을 눌렀다. 로블록스 58분 사용. 주말에만 게임이 가능한 우리집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은 벌어졌다. ‘그럴 리가 있겠냐’는 아이의 눈빛에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기회야. 우리 사이의 신뢰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 순간, 두 입술을 딱 붙이는데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소리 지르지 않으려고, 내 감정을 쏟아내지 않으려고. 잘못을 따져 묻는 내 심장이 되려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해요, 엄마"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결국 그 말을 내 뱉었다. 명품 연기를 펼치던 배우는 사라지고, 또래보다 작은 키의 내 아들로 돌아왔다. 아이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오고, 동시에 내 자만심이 와장창 무너지는 큰 소리가 내 골을 흔들어댔다. 당연히 내 심장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아이의 고해성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정말 업데이트만 하려고 했단다. 사용 시간을 보니 정말 5분 내외였다. 하지만 아이의 자제력은 딱 거기까지. 엄마 몰래 패밀리 링크 앱에 손을 대는 건 걱정했던 것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다행히 엄마에게 들키지도 않았다. 그 결과 지난 몇 주간 휴대폰 사용 시간 그래프의 키가 쭉쭉 뻗어올라가는 건 나도 이해가 되는 결과였다.  



오늘 점심시간. 아이의 휴대폰 사용 때문에 고민하던 회사 상사에게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 더 단호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한참 동안 열변을 토했었다. 우리 아이들을 은근슬쩍 성공사례로 제시하며, 상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오늘 저녁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하면서 말이다. 부끄럽고 민망하면 얼굴만 붉어지는 게 아니었다. 눈, 코, 입,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싱크대 코너 하부장으로 충분히 숨어 들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의 벌은 ‘25줄 고학년용 노트에 꽉꽉 채운 반성문 여섯 페이지 쓰기’와 ‘2주 주말 동안 게임과 유튜브 금지’. 가급적이면 글 쓰는 것을 피하고, 어떻게 해서든 주말 게임시간을 늘려보는 게 삶의 목표인 아이에게 가장 불편하고 싫은 벌이었겠지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노트를 찾아들고 식탁에 앉았다.



아픈 오른팔을 허공에 흔들어대며, 왼손으로 오른손을 주물러가며 아이는 그렇게 여섯 페이지의 반성문을 써냈다. 반성의 눈물이었는지, 비염 때문에 차오르는 콧물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반성문 쓰는 내내 두루마리 휴지를 엄청나게 풀어내었다.



“반성문 다 썼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이는 거의 탈진한 상태로 침대에 쓰러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오른손이 침대 밖으로 떨어져 나왔다. 다시 이불을 덮어주려는데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엄마. 그리고 너무 무섭게 혼내지 않아서 고마워요”



 어떻게 게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악뮤는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나 말하고, 난 어떻게 게임까지 사랑하겠냐 말한다.  그저 널 사랑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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