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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배 Sep 29. 2020

의도적 부족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


요즘 가장 푹 빠져있는 누군가가 추천해주어 영화를 보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원래 나였다면 예술성이 짙은 제목에 지레 겁먹어 꺼내보지 않을 영화다.

나에게는 편견이 '있음'이고 추천해준 그에게는 편견이 '없음'이다. 그리고 '없음'이 중요한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편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 있어 '결여'와 '없음'이 가져다 주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다.


쓰네오는 계속 있고, 조제는 계속 없다.


쓰네오는 건강하다. 미남이고 친절하며 건강하지 않은 구석을 찾기 어렵다. 반면에 조제는 사회적이지 않으며 걷지 못 하고 한 명 밖에 없던 가족도 사라졌다. 쓰네오는 조제의 이러한 모습에 빠져서였을까. 챙겨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이 살고 관계를 나누고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하지만 좋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며 가족에게 소개시키려다 등을 돌린다. 그가 느낀 감정이 사랑이었을까?


아마도 결여를 충족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너무도 많은 것이 있어서 결여를 찾기 힘든 쓰네오는 조제의 없음에 호기심을 느끼고 채워주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물론 쓰네오도 얻게 된 것이 없는 건 아니다. 맛있는 식사, 그리고 매일 같이 하는 관계들. 어느 정도는 충족되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것이 익숙해지고 그에게 주는 행복의 양이 작아질 때, 그 불균형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결여가 '무기'가 되지 않은 순간, 쓰네오는 휠체어를 사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제는 거부한다. 쓰네오가 더 채워줄 것이 없어진다면 그가 떠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말에 조제는 쓰네오가 떠날 것을 직감했을지 모른다.


사랑을 하고 싶다면 능동적으로 본인을 없앨 것.


나는 쓰네오가 조제를 사랑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조제를 채워주지만 자신이 없었던 적이 없기 때문.

사랑은 상호작용이다. 서로가 그들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때 더 극렬하게 타오르고,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한 쪽에서만 부족한 점을 메워주고 있다면, 메워짐을 당하는 입장은 사랑을 키워나갈지 모르나, 메우는 사람은 불쏘시개를 점점 태워나갈 뿐이다.


쓰네오는 조제를 떠나고 슬퍼하지만,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 사랑한다 말하며 거짓말하지 않았기 때문. 그는 채워줌, 메워줌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 해 도망쳤을 뿐이다.


만약 그에게도 어떠한 종류의 결여가 있었다면 아마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서 꼬인 부분을 찾아내고, 내부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아마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니다. 부족한 점을 발견할 새 없었을 뿐.


영화를 보고 생각한 것은, 사랑을 하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계속해서 본인의 부족함과 결여를 깨닫고 자부심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지점이다.


'장애'로 표현된 조제의 결여는 그 부분에서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완벽한 쓰네오는 그 부분에서 사랑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능동적으로 본인의 부족함을 느끼고 보여주어야 우리는 사랑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있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여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신형철 평론가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속 '사랑의 논리' 부분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평범하게 끝날 수 있는 작품의 이해를 광활하게 넓혀줄 것이다. 나의 해석 또한 상당 부분 그에게서 발췌했음을 명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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