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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배 Sep 29. 2020

인연이라는 데자뷰

영화 '너의 이름은' 리뷰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카미키 류노스케, 카미시라이시 모네

개봉2017. 01. 04. / 2017. 07. 13. 재개봉 / 2018. 01. 04. 재개봉


정말 늦게 보았다.


그리고 이제야 보았다는 사실을 한탄할만큼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단 하나의 단어에서 상상의 꼬리를 물고 분자적으로 들어갔을 때 어떠한 판타지가 펼쳐지는지. 그 신비로움을 알 수 있게 된 영화였다.

인연이라는 데자뷰

우리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통상적으로 첫 눈에 반했을 때, 혹은 자신의 가치관과 딱 맞는 이성을 만났을 때, 뭐 하나 거리낌이 없는 친구를 만났을 때 등. 태어나기 전에는 하나의 몸처럼 존재했을 것 같은 사람을 보고 인연이라고 칭한다.


수많은 인구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을 때 그 중 나에게 딱 맞는 인연이 단 한 명만 있다면, 그 확률은 현재 기준 약 78억 분의 1이다. 내가 되도 않는 확률을 가져온 이유는 인연의 신비로움을 말하기 위해서다. 지나가다가 첫눈에 반해 자신의 인연과도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처럼 신비로운 일이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나라는 사람에게 덜컥 강한 떨림을 주었기 때문.


이 영화는 그 신비로움을 거꾸로 풀어낸 듯하다. 우리가 인연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인연 속에는 시공간이 뒤섞인 우주적 역사가 있었고, 그 역사 속에 미세하게 남은 기억이 서로를 만나게 한 것이 아닐까.


어딘가에서 본 듯한, 지금 놓치면 안 될 법한 사람이 우연히 곁을 지나가고 서로가 뒤돌아본다. 처음의 곁눈질로도 이름이 궁금해지는 그 순간은 마치 데자뷰와 같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이지만,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임은 확실하다.


그러한 인연의 데자뷰를 상상 속에서 풀어낸 작품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스비 (結び)


무스비 (結び) - 맺음, 매듭, 연결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이다. 전혀 다른 시공간의 인물 두 명은 이를 관통하여 하나의 매듭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꼬인 줄이 풀어졌다 묶였다를 반복하듯 그들은 격일로 타인의 삶을 살아 간다. 그들의 시간은 다르기에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평행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과거의 그녀는 매듭을 묶고 시간은 꼬인다. 그 꼬임으로 그들은 서로를 알아버리게 된 것. (은 자체적 해석이다)


우주의 논리에 반하는 다른 시공간의 인물 간 '앎'을 우주는 혜성으로 방해한다. 과거 그녀의 존재를 끊어 서로의 선을 없애는 것. 하지만 미래의 그는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그녀의 과거로 가 그녀를 살려낸다. 결국 시공간의 흐름은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우주의 선물이었을까. 그들은 서로를 너무도 미세한 형태로 기억하게 되고 결국 다시 만난다.


과거에 엄청난 역경을 딛고 그들의 사랑을 지켜낸 사람들에게는 낚싯줄보다 얇은 하나의 '무스비'를 선물로 주는 것 같다.


이 무스비는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들의 이름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그 순간, 다시 만난 기쁨에 눈물이 나올만큼 좋은 그들에게는 더욱 굵고 단단해져서 나타나도록 설계된 것도 같다.


운명처럼 만난 인연,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 그들에게 서사가 있다면 이토록 아름답지 않았을까 상상할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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