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일종의 Origin 스토리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2017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017년은 제가 카카오 본사에서 일하면서 솔직히 조금 허우적 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야고백할수있다
케이큐브벤처스에서 신나게 일을 배워 가며 투자를 해 보고 있을 때, 카카오에서의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판단을 하고, 과감히 mothership 의 소환 빔을 타고 올라가서 부딪혀 보다가, 카카오브레인이라는 자회사 설립과 백오피스 업무도 수행하면서 카카오 그룹의 분위기와 살아남는 법 등을 익히고 있던 시절이었고, 또 카카오브레인이 자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정식으로 조직적으로 분리가 됨과 동시에 임시직으로 맡았던 일은 손을 떼고 사업부서로 발령을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변화가 계속 있다 보니 아무래도 정신적으로는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게 이 글의 핵심은 아니고요.
그러던 와중에, 여름 쯤에 당시 Google 코리아를 다니는 친구로부터 소개 제의를 받았습니다. 한국에 아주 재미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진출을 하는데, 운영진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처음엔 무슨 소리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사람 소개받는 건 좋아하게 된지 오래 된 터, 그냥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수동 어느 카페에서 미국인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둘 중 한 명은 지금 미네르바스쿨에 더 이상 재직하고 있지 않지만, 나머지 한 명이 (곧 이 글을 이어받아 기고를 하게 될) Anna 라는 캐릭터 입니다.
그 때 사실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을 같이 만났는지, 아니면 2차례에 걸쳐 따로따로 인사를 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요새는 3년이면 강산이 변하잖아요?
아무튼, 그 때 Anna 와 함께 미네르바스쿨 한국학생 6명 정도를 같이 만나서 커피도 마시면서 서로 소개하고 어떤 캐릭터들인지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2학년생이었으니, 지금은 다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 있거나 직장생활을 시작했거나 아니면 세상을 직접 바꾸기 위해 창업을 했거나 셋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참 설명을 듣고, 자기소개도 듣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걸 듣고 있으니, 아 여기가 대학교인데 교환학생처럼 학생들이 왔다가 가는 그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라는 정도의 impression 만 받고 나서, 신기하네 우리 땐 저런 게 있었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 후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 가을,
새로운 학기가 시작 되면서 2학년 학생들이 다시 한국에 몰려 오게 되고,
기업탐방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데리고 카카오를 찾아올 생각으로 Anna 가 제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What I've Learned 라는 세션을 혹시 학생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냐며. 저는 처음에 그 세션의 컨셉을 듣고 '아 인생후배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을 찾고 있구나, 그런데 어쩌지? 내가 지금 별로 해 줄 이야기가 없는데...' 라는 생각에, 고민 끝에 정중히 거절을 했습니다. "라떼는 말이지" 를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고, TED Talk 또는 inspirational 발표를 들어 보면 뭔가 내가 봐도 멋있게 들리는 그런 함축적인 선언적인 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해 줄 말, 뇌리에 남을 말들을 해 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내가 지금 내 앞길도 모르겠고 불확실한데 무슨 이야기를 맨정신으로 해 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Anna 는 한 차례 더 2018년 가을 학기 때 동일한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때는 저도 좀 더 준비가 되어 있었고 (= 스마트스피커 사업개발 업무를 하게 되면서 같이 일할 팀원들이 생기고 비로소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게 매우 컸었고), 그래 평소에 잘 하지 않는 그런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는 느낌으로 한 번 귀여운 젊은이들에게 해 주어 볼까 라는 생각이 생겨서, 수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청 베이스로 Anna 가 카카오라는 기업에 관심이 있는 약 20명의 학생들을 우르르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분히 영어를 전부 미국인 본토 스타일로 능숙하게 구사하는 2학년 학생들이 그 때 제게 던졌던 카카오에 대한 질문들은, 한국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사회인들 조차 쉽게 하지 못 하는 그런 류와 수준의 질문들이었습니다. 시장과 사업모델, 회사의 진화, 이런 서비스는 왜 한국에서 이렇게 못 하나요, 등의 깊게 들어가야 하는 질문들을 2학년 아이들에게 받고, 저도 한 번도 답해 본 적 없는 그런 답들을 찾아 내느라 현장에서 땀을 흘리면서 (카카오라는 회사 입장에서) 고민하고 최선의 답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날의 경험이 더 충격이었던 것은 사실 다른 계기도 하나 더 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선배 중 한 명이 글로벌비즈니스학과 1학년생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어서 마침 비슷한 타이밍에 30~40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기업탐방을 몇 주 전에 와서 제가 만나 주고 회사소개를 해 주었었는데, 그 때 받은 경험과는 너무나도 다른 차원의 그런 조우였습니다. 아무리 1학년과 2학년의 생각의 수준이 차이날 수 있다고 해도, 전자의 경우 카카오의 다양한 서비스를 나열하는 수준으로 눈높이를 맞춰 줘야 했던 반면 ("여러분, 멜론이 카카오 서비스인거 아셨어요?"), 그리고 제일 화려한 반응을 끌어냈던 타이밍이 카카오의 시커먼 스마트스피커에 리본라이언 자석피규어를 얹어 줬을 때에 eyes light up + 기립박수를 쳤던 그런 순간이었던 것을 비교해 보면, 어찌 보면 MBA학생들과 비슷한 태도와 관심을 가지고 저의 개인사 소개 및 카카오라는 한국 대기업 소개를 주의 깊게 듣고, 훅훅 찌르는 질문들을 하고,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려고 했던 그 20명 학생의 자세가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인터랙션 덕에 미네르바스쿨에 대한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고, 교육의 미래란 저런 형태의 교육이 될 것인가에 대한 혼자만의 고민도 그 때부터 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Fast forward to 2019년 초.
다시 카카오벤처스로 복귀하게 되었고, 돌아올 때쯤 Anna 에게 같이 일해 볼 만한 다른 친구를 소개 시켜 주기 위해 한창 카톡으로 어레인지 중이던 때,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Minerva Project 의 CXO (Chief Experience Officer) 라는 Robin Goldberg 라는 분이 방한을 한다며, 다 같이 식사를 하면 어떻겠냐고 Anna 가 제안을 해 왔습니다. Robin 은 실제로 만나 보면 (정말로 좋은 뜻에서) 엄마암탉 같은 분이시고, student life and experience 를 총책임자로서 맡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Minerva School(s) 와 Minerva Project 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고, 아 이게 사실은 비영리 교육재단이 운영하는 그런 일반적인 대학은 아니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2019년 2월 카카오벤처스로 복귀하자 마자 Minerva Project에 투자할 기회를 얻어 빠르게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장을 할애해서 (오히려 저 보다도 핀포인트벤처스의 이성원 대표가 더 잘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여기까지만 쓰고 줄이겠습니다. 아무튼, 복귀 후 첫번째 deal 로 Minerva Project 의 Series C(!!! 베이비유니콘!!!)에 투자를 하게 되었는데, 제 입장에선 돌이켜 보면 우연히 알게 된 미네르바라는 브랜드와 교육에 대한 비전에 대해서 감화를 받고 또 총명한 학생들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너무나도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투자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같이 인류의 미래에도 베팅해 볼 수 있는 시도도 해 볼 수 있게 되어 지난 몇 년간 쌓은 여러 인연에 대해 매우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카카오벤처스에서 왜 미네르바에 투자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풀어서 공유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