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한 획입니다
한국 최초의 100배, hundredfold, VC펀드가 나왔다는 기사입니다. 저희 이야기.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2/02/08/4WNVYZI6BNAMBO3MWNCNNIOHFQ/
(이 글은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100% 개인 의견입니다. 카카오벤처스라는 회사의 공식 입장과는 상관 없습니다. 이틀 전인 2월 8일에 조선일보가 게재한 위의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을 적었습니다.)
벤처캐피탈 펀드는 수 년의 시간에 걸쳐 그 성과가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인덱스 펀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종목을 담아 두고, 그 underlying assets 가 잘 되기를 기다렸다가, 종합적인 점수를 "수익률" 로 증명해야 하지요. 한국적 예를 들면, 보통 펀드를 하나 만들 때, 8년의 약정기간을 두고, 한번 정도 1년만큼의 연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반전 4년의 기간 동안에 투자를 하고, 후반전 4년 동안 무르익기를 기다려 줍니다. 그래야만 벤처기업들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대기만성을 이룰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수 있겠죠.
그 10여년의 세월을 기다려 주는 기간 동안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 기다림의 여정은 멀고도 험할 수 있습니다. 신생 VC일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 동안 펀드를 새로 만들어야 그 4년의 투자기간이 끝난 후에 또 새로운 투자를 이어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우리가 투자를 이렇게 잘 하고 있다" 를 잘 보여 줘야 2번째, 3번째 펀드에 투자자들이 출자를 해 줄 텐데, 소위 track record 가 아직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과 똑같은 입장에서 어떻게든 모객을 해야 하는, 그런 자린고비의 기간이 필요한 셈입니다.
케이큐브벤처스, 현 카카오벤처스, 저의 지금 직장 또한 마찬가지 기간을 겪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가 딱 펀드레이징이 살짝 어려운 그 타이밍이었고, 누구나 겪는 sophomore syndrome 을 또 몇 년의 세월에 걸쳐 극복하는 과정을 계속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켜본다고 쓴 이유는 저 혼자 본사에 끌려 갔다가 다시 돌아온 공백기가 있었기에...). 이제는 초반에 투자를 해 놓은 기업들 중에서 잘 된 케이스가 많이 나오고 있기에, 저희 입장에서는 한국 VC 중에서 처음으로 영외펀드(offshore fund) 가 아닌 KRW 기반 한국 펀드에 최초로 해외 국부펀드를 모시는 그런 업적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그런 OB 패밀리사도 많이 배출 되었죠.
카카오벤처스의 첫 IPO를 안겨 준 넵튠을 비롯해서, 리뷰 품질과 맞춤형 스트리밍을 그 어느 OTT서비스 보다 잘 제공하는 왓챠, 그리고 최근에 유니콘이 된 루닛, 증권플러스로 시작했다가 업비트 덕에 대박이 난 두나무 등. 덕분에 카카오벤처스 (구 케이큐브벤처스)의 첫번째 펀드인 2013년생 1호 펀드가 드디어 그 실적을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온 셈!
카카오벤처스는 현재 300억 정도 규모의 펀드를 매번 결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펀드들은 초기 투자에만 쓰이고, 4년의 기간 동안 투자를 할 수 있지만, 보통 3년이 지나기 전에 소진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중첩을 시키기 위해 대략 2년마다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누적 결성규모는 계속 늘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간에 두 번 정도는 300억보다 더 큰 규모의 펀드를 만든 적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이유가 있었고, 목적이 달랐다고 보시면 됩니다. 더 크게 만든 최근 펀드 하나는, 먼저 다른 펀드로 투자해 놓은 원숙한 "패밀리사" (카카오벤처스의 포트폴리오 / 피투자사) 에 추가 투자를 크게 할 기회가 생길 때, 가용하는 펀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희의 정체성과 외부 소통 관점에서는, 300억 정도의 초기투자 펀드만 내세우게 되고, 창업 직후 스타트업을 여전히 바라보고 찾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300억짜리 펀드를 계속 만들 수 있는 건, 그 동안의 모멘텀과 그리고 일해온 방식, 시장에게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줬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2013년으로 돌아가 보면 초기투자 분야는 꼭 그렇지 않았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100억짜리 펀드를 만드는 것은 신생VC 입장이었던 케이큐브벤처스로서도 그렇고, 당시의 시장 상황을 놓고 봤을 때에도 100억 펀드로 2~3억 단위의 투자를 하는 것은 효율적일 뿐더러 주효했습니다. 그 때엔 정말로 지금 관점에서 되돌아 보면 '저 밸류에 저런 기업에 투자를 할 수 있었다니' 라고 할 수밖에 없던 것 같습니다. 아이폰 도입으로 모바일 생태계의 태동기가 시작되었고, 앱 기반의 스타트업들이 막 나오기 시작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또는 overhype 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케이큐브벤처스는 1호 펀드를 100억 규모로 만들었습니다. 그 펀드가 10년이 지난 시점에 정산을 해 보니, 100배의 가치 상승이 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기사화가 좀 되었으니) 두나무에 당시 저희가 투자를 해서 20% 수준의 지분을 얻었었고, 지금의 두나무의 기업가치를 생각해 보시면... 그렇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정말로 엄청난 수익률이 되는 것이죠.
펀드 100배 라는 숫자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큰 숫자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1호펀드가 저렇게 잘 될 수 있었던 건, 좋은 창업가를 많이 만날 수 있었던 타이밍, 당시 케이큐브의 포지셔닝, 그리고 시장의 운. 이 세 가지가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두나무 같은 창업팀을 만날 수 있었고, 지를 수 있었고, 또 잔잔?하던 사업에 큰 파장을 일으켜 준 crypto boom 이라는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에, 거래소 비즈니스가 대박이 날 수 있었고. (두나무 라는 회사가 얼마나 대박을 냈는지는 직접 검색해 보시면 되겠음)
단, 확실히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은, 결코 카카오벤처스가, 또는 카카오가, 그리고 또 카카오벤처스 현 임직원이 100배에 상응하는 노력을 넣어 가며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창업팀, 스타트업, 그리고 시장이 만들어 준 거죠. 제 스키 강사님이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잘 나도 소용 없다, 학생이 월드클래스이면 올림픽 가는 거고, 학생이 못났으면 인서울 못 하는 거다, 라고. 그래서 저는 결코 저희들이 잘 해서라기 보다는, 사업을 일으키신 분들이 대단하고 존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VC들 중에서 "내가 잘나서 투자를 잘 하고 저 회사가 잘 되었어" 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대부분 다 뻥입니다.
100배라는 숫자는,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와닿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100억짜리 회사에 투자해서 1조가 될 확률은 매우 낮은데, 이걸 수십 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레벨에서 얻은 결과라고 하면, 좀 더 와 닿으실 지 모르겠네요.
한국 벤처캐피탈의 평균 수준은 IRR 이라는 지표로 봤을 때 10%가 채 되지 않습니다. IRR은 투자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지표인데, 10년으로 가정해서 환산하면 ~3배 라는 뜻입니다. 3배가 되면 평타로 쳐 줍니다. 10배가 나면 잘 되었네,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스타트업 하나하나가 Power Law 의 적용을 받듯이, VC펀드도 마찬가지로 적용을 받습니다. 잘되는 펀드와 그렇지 않은 펀드들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VC의 본고장도 IRR 기준으로는 20%가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미국에서 조차 100x 펀드는 흔하지 않다고도 알고 있습니다. Shark Tank 로 유명해진 Chris Sacca 의 초기 펀드가 250배 났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또는 중국에서 가끔 그 정도가 나올 때도 있었다고 하고요. 최근에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크립토 전문 펀드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작년 호황기 땐 10x 수익을 낸 펀드들도 있었다고는 하네요. (언제 한 번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다...)
정리하면, 카카오벤처스의 1호펀드는, 1) 정석대로 초기투자에만 집중했고, 2) 스타트업 신주투자만 하는** 회사 철학에 따라 펀드를 운영해서, 3) 오랜 시간 끝에 역대급의 fund return 을 안겨 준 입지전적의 펀드로 남을 것 같습니다.
**신주투자는 회사가 새로 발행하는 주식만 취득하는 것이고, 반대로 구주투자는 주식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돈을 주고 그 주식을 양도받는 것을 말합니다. 후자는 해당 회사에게 도움이 되는 투자가 아니죠.
마지막으로, 저 기사에 대해 짚고 넘어갈 내용 두 가지.
첫번째, 지금까지 9개 펀드를 결성한 건 맞는데, 3300억원이 아니라 3630억 입니다. 팩트체크 fail. (저희의 홈페이지에 8개 3300억 이라고 적혀 있는 건 outdated 된 것 맞는데, 어떻게 그걸 들어가 보지도 않고 저렇게 쓰셨을까... 의문.)
두번째, 기사의 취지, 또는 취지가 그렇지 않았더라도 기사가 주는 impression 은, 마치 "카카오를 위해" 카카오벤처스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는 내용이 기사 전체 중에서 비중이 커 보이는 기사라는 겁니다. 이 부분까지만 설명을 하고 본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카카오벤처스는 카카오의 100% 자회사 맞습니다. 저희는 카카오벤처스의 임직원 이고요. 보통 VC펀드라는 Partnership 이 결성될 땐, GP (General Partner of the Partnership) 역할과 LP (Limited Partner) 역할을 하는 Partnership 의 약조 내용이 규약 (Limited Partnership Agreement) 라는 계약서에 명기됩니다. 회사가 설립될 때 정관에 회사의 기본 골자가 기재되듯, 규약도 그 형태가 비슷합니다. 그 안에서, GP와 LP간의 역할분배가 기술되고, LP로서 정부 기관이나 연기금 금융기업 민간기업 등이 출자를 하고, 카카오벤처스는 GP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서로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그 GP의 임직원인 저희들이 GP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됩니다. 각각의 펀드는 그래서 사업자등록증과 유사한 고유번호도 발급되고, 각각 유한회사처럼 특정 목적을 위해 돌아가는 entity 가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펀드라는 파트너십이 투자를 하고, 카카오벤처스는 이를 facilitate 하며, 저희는 펀드의 수익에 충실해야 하는 신의성실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카카오벤처스의 투자는 카카오가 투자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아주 멀 수 밖에 없는 구조이죠.
구조에 대해 한 가지 부연설명을 더 하자면, 저희들이 의사결정을 할 땐 그러면 어떤 식으로 하느냐, 라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더 할 수 있습니다. 피칭 및 투자심의위원회, 통상 IC 라고 부르는 그 의사결정의 방식, 그 두 가지가 key 인데, 스타트업 창업가가 저희에게 와서 발표를 하실 때 카카오의 어느 누군가가 같이 참여를 한다면, 그건 카카오를 위해 투자를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회사니까, 펀드 구조를 저렇게 셋업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오퍼레이팅을 할 때 카카오를 참여시킨다면, 정말로 카카오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펀드운영 자회사가 맞겠죠. 하지만 카카오벤처스는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펀드를 운영하고, 펀드 수익을 책임집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CVC (Corporate VC) 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또는 100% 카카오 돈만 받아서 펀드를 만들고 계속 그렇게 투자를 하고. 투자한 후에 엑싯도 카카오 쪽으로 M&A 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하고.
저 기사에 "카카오의 수색대 역할" 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건, 카카오 입장에선 카카오벤처스가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물어올 때, alignment 를 위해 "우리가 세상에 막 생겨나고 있는 기회들을 가장 먼저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카카오와 상관 없는 분야 투자를 해 왔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셔라" 라고 하는 입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 구구절절 끝! 많은 축하 부탁 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