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되는 시간들이 이어져 오늘이 되었다

[페미니스트의 탄생 07.] 성폭력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by 틂씨




2010, 대한민국

서울의 어느 골목길, 슈퍼마켓 앞에서 A의 엉덩이를 어떤 남자가 일부러 치고 지나갔다. 대학생 A의 주변엔 여러 남자 동기와 선배들이 있었으나,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가해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했다. 분명 누군가는 보았을 법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A는 성추행 자체의 불쾌함보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주변인들의 행동에 실망한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2020, 네덜란드

B는 가까운 친구의 소규모 생일 파티에 갔다. 그녀는 이미 사귄 지 2년이 넘은, 동거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였으나, 그날따라 남자 친구는 다른 일 때문에 파티에 조금 늦었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 한 남자는 무척 취한 상태였다. 그는 B에게 끈적하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 옆으로 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평소의 B라면 what the fucking are you doing? 이라 말했겠지만, 그날따라 그녀는 자리에서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소수의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기 어렵기도 했다고 했다. 그날 밤, 그는 B에게 '나의 추파를 너의 엉덩이가 즐기지 못했다면 유감'이라는 짧은 문자를 보내왔고, B는 그 문자를 캡처해 그날 함께 있던 주변인들에게 전송했다고 했지만, 그것으로 가해자가 얼마나 큰 타격을 입었을지는 모르겠다. 파티 주최자인 C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그와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했으니까.


이런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게의 여자들은 일생 동안 여러 번 이런 불쾌한 상황을 마주한다. 그때 우리가 분노하면 듣는 이야기는 대부분, 여자들은 그런 일을 흔하게 경험한다더라, 잊어라. 어차피 별거 아닌 일들로 신고해도 못 잡는다. 같은 이야기뿐이었다. 분명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은 남자라서, 그리고 그래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와서, 그런 일을 저지르곤 했다.




2020, 네덜란드

(https://www.nrc.nl/nieuws/2020/10/30/hoe-een-kunstenaar-carriere-maakt-onder-aanhoudende-beschuldigingen-van-aanranding-en-verkrachting-a4018047?fbclid=IwAR3D8PZovQdX4nwXLJNR_nxSg5NinmxNZuHGQdEu1I5JijxD5ETF6knAqpc)


네덜란드 예술계의 미투가 크게 터졌다. 직접적인 피해자만 20명이 넘을 뿐 아니라 80여 명에 달하는 주변 참고인 조사가 진행된 대규모 스캔들. 기사가 나가고 나서 많은 아티스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고, 언제고 한 번은 터질 것 같았다고. 예술한다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이상의 그의 성폭력, 폭행,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등은 누구에게도 제지받지 않았다. 피해자들도 오랜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본인이 겪은 피해에서 벗어나는 일이 먼저였을 것이다. 두려움과 수치심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들도. 가해자는 주목받는 아티스트였다. 큰 전시를 여러 번 열었고,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도 받았다. 그와 함께 일한 여러 재단과 갤러리 관계자들은 이제 와서 그런 사생활적인 문제까지는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는 그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성명만 뒤늦게 올려 여론에 발을 맞추었을 뿐이다. 그의 일탈과 온갖 비행은 '아티스트는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작품은 훌륭하잖아'라는 명제로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여자들은 그가 소문이 좋지 않으니 절대 그와 단 둘이 있지 말라는 조언을 서로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런 사례. 2018년 이후 한국에서도 여러 분야의 미투 운동으로 많은 사건들이 고개를 들었다. 단순히 문화예술계에서 떠오르는 건만 짚는다고 해도, 2016년 일민 미술관의 H 큐레이터 사건, 2018년 미투 운동의 초석이 된 연극계 이윤택 감독부터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 조민기 배우가 있었고, 2020년에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던 믹스라이스의 Y 작가가 성폭력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하나다. 자신이 속한 업계에서 성취를 보였기에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그 권력을 옳지 않은 방법으로 유용했다. (문화예술계가 아닌 분야까지 포함하여) 시대도 국경도 다른 각각의 사례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사회적/정치적 약자에 대한 (성)폭력. 오랫동안 그래도 괜찮았던, 관행으로 넘겨오던 사건들.






그들은 그래도 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되나 싶은 생각을 하거나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것이다. 혹은 다른 권력자의 횡포를 목격하고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권력을 잡으면 뭐든 되는구나를 경험하고 나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구나.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상습이 되었을 것이며, 그러는 동안 누구도 문제 삼지 못했던 것이다. 권력 앞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므로. 피해를 고발해도 결국 2차 피해를 받는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까. 그래서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다분히, 아주 많은 방면에서 권력관계가 만들어낸 폭력의 일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물리적으로나 권위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폭력이나 추행을 일삼는/시도하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전체 성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비율로 드러난 숫자만으로도 권력과 힘의 관계는 상당히 명료해 보인다.



막상 미투 고발이 공개적으로 일어나도, 대게의 사람들은 믿지 않거나, 피상적인 분노를 표한다. 뉴스 댓글에 가해자들을 손가락질하며 화를 내는 것은 쉽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회 문제나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분노 너머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마음이길 바란다. 성추문이건 아동 폭력이건 인종 차별이건, 결국 그것은 권력의 문제로 귀결되기 마련이고, 상황 자체를 비난하는 것 만으로는 변화를 꾀하는 힘이 될 수 없다. 그것보다는 사회적 인식의 문제, 교육의 문제, 더불어 그것이 나 자신의(혹은 내 옆의) 일일 때 어떻게 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더 필요하다.


평소에 얼마나 진보적으로 살아왔느냐 나 얼마나 과감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용기를 가졌느냐 하는 점과 성폭력을 마주 당하는 순간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큰 관련이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사람을 당황하고 얼어붙게 만들기 때문이다. 찰나의 순간, 소리를 지르거나 강경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게 뭐지? 내가 당한 것이 피해인가? 판단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평소에 가상 시물레이션을 해보았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은 무작위의 사람이라도 그럴진대, 가해자가 상사라면? 유명인이라면? 권력자라면? 그러므로 뒤늦게서야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왜 그 순간에 목소리를 내지 못했느냐 묻는 것은, 가혹할 뿐 아니라 옳지 않다. 당신이 결코 경험한 적 없는 일이므로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일뿐이다.



나는 사회적 압력이 생각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특정 행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태도가 분명할 때, 다수의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사회적 규율에 따른다. 법과 제도, 그 밖에 바뀌고 개선되어야 할 영역은 무척 많지만, 또한 개개인의 의식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적 시선과 의식, 태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빠른 시간 안에, 그러면 안되지. 당연하잖아. 아무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 무식하고 예의 없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니까. 하는 일에 성추행이, 희롱의 언어들이, 권력에 의한 폭력들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유별나고 예민하고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정당하고 올바르며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임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그래도 되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도록, 그때까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이야기하고, 공론화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관계는 독립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