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독립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페미니스트의 탄생 06.] 독립적이며 개인적인 삶을 향한 선언

by 틂씨





한국에서 어떤 선언들은 유명인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그랬고, 하리수의 트랜스젠더 선언이 그랬다. 그리고 사유리의 비혼모 출산으로 비혼 출산이 회자되고 있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낸 사람들이라 해서 '공인의 책임감'을 운운할 일이 아니라, 그들이 얼만큼의 용기를 내어 다짐을 하고 결정하여 결국 어떤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https://youtu.be/SLa8WbK_qb4

The Swedish Theory of Love, 2015 (Documentary)



4년 전쯤, 친구를 통해 스웨덴의 개인주의적 사회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되었다. <The Swedish Theory of Love, 2015>. 스웨덴은 오랫동안 개개인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런 사회적/경제적인 조건을 국가적 차원에서 만들려고 노력해왔고, 그 결과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개인적이며 개인의 실현을 중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덕분에 많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비혼의 상태로 정자 기증을 이용하여 싱글맘이 되는 케이스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커플일 경우도 파트너/동거인(삼보)으로 등록할 뿐, 결혼에 굳이 목을 메지 않는다. (북)유럽이 가파른 개인주의로 나아가도 여전히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는 혼외 출산을 인정해주기 때문인 것이다.




full_content_21_Inglehart_en.jpg The Cultural Map, 2015


* 참고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전통적 가치(가족, 종교, 국가)보다 개인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며, 왼쪽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단순히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삶을 넘어 자아실현과 성취에 가치를 두는 삶이다. 한국이 속한 CONFUCIAN은 유교 문화를 뜻하며, 스웨덴은 각 축의 맨 끝, 오른쪽 위에 있다.



대게의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은 거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는 동안 세금을 엄청나게 내고, 그에 따른 사회 보장 제도를 제공받는다. 가끔 한국에서 북유럽의 복지 제도와 비교를 할 때가 있는데, 일단 한국은 미국처럼 자본주의 체제에 가깝기 때문에 북유럽과 동일한 사회 시스템이나 의식을 요구할 수 없다. 게다가, 폭넓은 사회 보장 제도가 반드시 유토피아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혼자 사는 것에 더해, 1/4의 스웨덴 사람들은 혼자서 쓸쓸히 죽어간다.


영화 속에서 한 의사는 스웨덴과 극단적 반대 상황의 정점인 아프리카를 찾아간다. 여전히 사람들이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곳, 개인보다는 가족과 종교, 국가 등의 집단 문화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곳. 어떤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며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에 실제로 스웨덴 친구에게 그들의 삶에 대해 듣고 신기하다고 여겼는데, 몇 년 만에 한국도 그런 일들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사회가 빠르게 되어가고 있다.






비혼과 더불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새로 태어나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지대하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으로 부모를 이분화한다면,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버겁게 시간을 견디며 사는 사람들과 필요한 환경을 제대로 준비하여 의지와 여유가 있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자의 절대적인 숫자는 적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후자가 될 자신이 없었다. 체력도, 재력도, 정신력도. 하지만 충분히 교육을 받고,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혼자라고 해서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사회적으로/법적으로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의도하지 않아도, 앞으로의 개개인의 삶은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인 형태를 향해 갈 것이다. 평생-직장이나 평생- 이라는 단어가 붙는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것처럼, 결혼 같은 시스템으로 정해진 평생-관계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히려 짧든 길든, 지금 내 앞의 소중한 사람과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는 만큼만 일시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이 관계 자체에는 더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도장을 찍었으니 물릴 수 없어, 하는 마음보다야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신뢰를 쏟는 쪽이 오히려 행복에 가까이 가는 방향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제도나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개인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인간관계는 근원적 독립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스웨덴 정치인들의 선언문이 아니더라도, 그런 관계는 분명히 좀 더 평등하고 개인으로써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일 테니까.




All authentic human relationships have to be based on
the fundamental independence between people.
February 1972, Sw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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