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틂씨 Feb 16. 2021

너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Letter Series] J에게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너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이과를 선택한 나와 달리, 너는 처음부터 뼛속까지 문과 학생이었으니까.

아마 그때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이 어떤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너처럼 쓰는 거라고 답했을 거야. 네 글은 언제나 시원스러웠고, 그래서 네 편지를 받는 것은 매번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내가 말했던가. 어쩌면 나는 네 답장을 받고 싶어서 편지를 썼는지도 몰라.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편지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고 3 생활에 지쳐갈 때쯤이었는지, 그 전부터였는지.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만나던 쉬는 시간이나 하교길이 뜸해졌을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부모님 집에 모아둔 네 편지들이 그대로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편지를 볼 수가 없네. 가끔 네 편지들을 주르륵 꺼내어 읽을 때면, 내가 보낸 편지들이 궁금하기도 했거든. 너의 말에 나는 뭐라고 답을 했을까. 내가 뭐라고 적었길래 너는 이런 이야기를 적어 보낸 걸까. 남은 반쪽의 퍼즐처럼. 요즘엔 뭐든 인터넷으로 전부 해결되는 세상이니까 원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직접 보낸 편지들은 아무래도 그렇지 않잖아.


너는 먼지가 쌓인 책들이 놓여 있던 도서실을 운영하는 도서부였지. 점심을 후다닥 먹고, 남은 점심시간 동안 친구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사람. 종이 장부에 열심히 열람 도서를 적고. 나도 덩달아 신간과 예약도서를 신청하며 자주 들렀던 것 같아. 대체로 도서실은 늘 조용해서, 혼자서 가만히 책들을 둘러보는 시간이 좋기도 했고. 고등학교 도서실에 대단한 책이 많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괜찮은 신간이 들어오기도 했던 것 같아. 그때 우리가 고 1이었을 거야. 문과와 이과로 반이 나뉘기 전.


너는 내가 처음 만나보는 류의 사람이었어. 독립적이었달까. 왜, 어릴 땐, 무리 지어 어울리거나 아니면 단짝 친구 한 명과 모든 걸 함께 하거나 그렇잖아. 난 혼자서는 새로운 보습 학원에 가는 것도 어려워했으니까. 그런데 너랑 친구가 되고 나서 놀라운 세상을 알게 되었지. 친구 없이도, 혼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짝 지울 단짝이 항상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친구라고 모든 걸 함께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그때는 그게 되게 별난 일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유난히 어른스럽다고 느끼기도 했고. 네 글이 어른스러웠던 건 그래서 일거야. 네가 어른스러운 사람이어서. 그때 유난하던 피부 트러블만 아니었다면, 나는 네가 동급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걸.


반이 갈리고, 저마다의 미래를 위해 주말이고 방학이고를 가리지 않고 자습실에 나와 앉아 있던 그 긴긴 시간들을 기억해. 그곳에 앉아 있던 시간만큼 공부를 집중해서 했다면 내 미래의 어떤 부분은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지. 꾸역꾸역 무겁게 지고 간 문제집과 교과서를 채 다 펴보지도 못하고 내내 졸거나 엎드려 자다가 소화 불량에 걸리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 그럴 때 가끔 네 손글씨가 적힌 편지를 받으면 그렇게 막 기운이 나고 신이 나는 거야. 친구들이 뭐야 뭐야 하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응, 다른 반 내 친구! 대답하고 자습실 구석에 앉아 편지를 열어보고 그랬는데. 그때도 나는 마음이 피로해지면, 일기를 많이 썼어. 힘든 마음은 전부 일기에 눌러 적었지. 하지만 일기는 일방통행이잖아. 너와 주고받는 편지는 말 그대로 주고, 받는 일이니까. 말로 하지 못하는 일들을 A4용지에 글로 꾹꾹 눌러 적어 너희 반 뒷문으로 가서 저기, J좀 불러줄래? 하던 시간들이, 아득하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면 네 생각이 났어. 삼십 대의 J는 어떤 모습일까. 문학을 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면 편집자나 에디터, 기자처럼 글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면 혹시 국어 선생님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그때, 나는 미래의 네 글이 무척 보고 싶었거든.



오늘은 빛이 좋은 날이야. 이상기온 덕분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어서 하얀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 오랜만에 한국의 겨울처럼. 어쩌다 나는 먼 나라에 와 있거든.

너에게 닿을 수 있다면, 네가 언제나 너의 글을 응원하는 팬이었다는 걸 꼭 말해주고 싶었어. (아닌가, 이미 언젠가 편지로 고백한 적이 있던가.) 네가 글 쓸 때마다 반짝이던 눈빛이 오래오래 빛나기를 바랬다고도.





매거진의 이전글 각자의 삶을 알아서 잘 살아나가기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