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 책 속에서 수많은 나를 마주하기
자가 격리의 시간 동안 주로 책을 읽었다.
경기 사이버 도서관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날 때 ebook은 싫고 그렇다고 종이로 된 책을 가득 들고 오기도 어려워서, 그동안 한글로 된 책은 거의 읽지 못했다. 한국형 웹에 적합하지 않은 맥북 덕에 읽기의 몫은 핸드폰에게 돌아갔다. 이럴 거면 차라리 ebook 리더기를 쓰는 편이 나았겠다 싶지만, 오랜만에 한글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스마트폰에 눈을 대고 글을 읽는 일은 생각보다 더 피곤해서, 더욱더 속도를 내어 읽었다. 빨리, 빨리, 빨리.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몰아보는 일처럼, 몰아 읽기(binge-reading).
속독을 하게 되면, 주어와 동사나 메인 글감만을 주로 읽어 내려가기 때문에 나머지 관형어나 조사 같은 부차적인 요소들은 쉽게 지나치게 된다. 미묘하고 섬세한 표현을 좋아하면서도 속독을 멈추지 못한다. 곰곰이 곱씹고 싶은 마음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거나 끝을 보고 싶은 욕심을 거의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책 목록이 넘쳤다. 화면 맨 밑의 % 는 금세 늘었다. 100%가 가까워지면 책 한 권이 끝난다.
책을 쉽게 읽는 편이다. 고전이나 길고 좁고 두껍고 오래된 책들도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내게 재미없던 책이란 주로 자서전이나 에세이류였다. 도서관 에세이 코너에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에세이가 어찌나 많던지. 굳이 책으로 남겨야 할 만큼 거창할 것 없는 자신의 삶을 구구 절절 적거나 비 오는 창문의 사진을 커다랗게 박아 놓은 포토 에세이는 피하고 싶은 책 1순위였다. 읽어도 남는 것이 별로 없다고, 그때는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주 (좋은) 에세이를 읽는다.
열 권의 대출과 다섯 권의 예약을 꽉꽉 채워가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어 재끼다가 읽기 어려운 책을 만났다. <이슬아 수필집>. 난생처음, 난해해서가 아니라 양이 많아서 읽기를 마치는 것이 어려웠다. 핸드폰에 아무리 고개를 박고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쉴 새 없이 움직여도, 여전히 읽은 양이 10-20%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뭔가 잘못됐다. 이럴 리가. 이 정도면 다른 책을 한참 읽다가 문득 확인했을 때 50% 정도는 읽었다고 나와야 보통인데. 그제야 페이지를 살펴보려 했지만 전자책에는 페이지가 없다. 그저 이런 속도라면 어마어마한 양이겠거니 할 뿐. 어떻게 매일 이렇게 긴 글을 썼지. 지루하지도 않고, 반복되지도 않게. 적당히 뾰족하고, 적당히 감각적이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기분을 독자에게 전한다.
여성 서사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읽던 중이었다. 자주 청춘의 가난과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에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보다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 게다가 사람들은 행복을 드러내는 사람에게는 관대하지 않지만, 고통과 불행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관대하다. 가난과 불행은 어떻게 적어야 담백한 사실로 적힐 수 있을까. 그렇게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불행의 전시로 느껴질까? 에세이 시장은 이미 젊은이들의 퇴사와 가난과 불안 같은 것들에 둘러 쌓여 질식하고 있는 것 같은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나 역시 그런 주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을 절대적인 불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내 손톱 밑의 가시 같던 결핍들에 대해 쓰고 불온한 과거를 돌아본다. 그래 봤자, 전문가가 아닌 내가 지난 시간에 어떤 이름을 붙여 주어도 그것으로 인해 삶이 온전하게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수필집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글 안에 가득 들어있는 작가의 가족사다. 그 가족사는 너무 생생해서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사가 없는 사람은 사실 없겠지. 지구 상의 어느 누구도 온전히 행복하며 서로 사랑만 하고 결핍 없는 가족 아래 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풍족한 것의 반대쪽 어느 편에는 결핍과 갈등이 존재한다. 그걸 알게 되는 데에 서른 해가 넘게 걸렸다. 작가가 적어 내려가는 도시의 풍경이나 청춘의 마음, 부모와 가족의 이야기들이 어떤 자극 점이 된다. 덕분에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을 복기해낸다. 엄마는 어떤 젊은이였을까. 나는 어떤 어린이였나. 친척들의 관계와 외할머니의 모습, 먹거리, 동생과의 에피소드들, 알지 못하는 것을 쉽게 시도하지 못하던 나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 따돌림 비슷한 시간을 통과하던 나, 혼자서 뭐든 해보려고 노력하던 나. 나. 나. 시절마다의 나들에 가로막혀 잠시 숨을 고른다.
속독을 하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 뭐든 흐릿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기억들과 싸워가면서, 그래도 그 끝을 향해서. 내내 미세한 두통과 메슥거림이 떠나지 않았고 그것을 걱정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으나, 동시에 극심한 진통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그저 읽고 쓰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다행인가.
한동안 식욕도 잃었다. 꼬박 챙겨 먹던 세 끼를 두 끼로 줄여도 배가 자주 고프지 않았다. 아무 때나 원하면 의사를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이상하고 확실하지 않은 기분을 어떻게든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나는 의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기분과 느낌과 증상을 영어로 꼼꼼히 찾아보고 나서야 그를 만나러 간다. 한 손에 여전히 사전 기능을 탑재한 폰을 꼭 쥐고서.
여러분, 이방인의 삶은 실은 이런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