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작은 다정함들은 힘이 세니까
2021, 올해 연말의 회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인터넷을 켜고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문장을 남기고, 다짐을 나눈다. 올해의 무엇, 좋았던 순간, 잘한 일들, 그렇지 못한 일들. 숫자와 사진, 기록들로 이루어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타인의 회고들에 둘러싸여 약간은 압도되었다. 그들 각자에게는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나는 회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도 꼽지 않을 거야.
낮에 장보기 겸 산책을 나섰다. 기온이 따뜻하네. 영상 10도 안팎을 맴도는 겨울이라니, 공기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겨울 날씨 아닌가. 밤에는 전쟁이 벌어질 것이므로, 낮에 걷는다. 실제로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원래 네덜란드에서는 연말에 모두가 공식적으로 폭죽을 쏠 수 있기 때문에 매년 31일 밤부터 새벽 두어 시 까지는 길거리에 화약 냄새와 연기, 폭탄 소리로 가득 찬다. 하지만 코로나로 응급실 인원을 감당할 수 없는 정부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공식적인 불꽃놀이를 금지했으니, 평소 때보다야 낫겠지.
이 나라의 심플한 연말 전통이라면 올리볼렌(oliebollen)이라는 작은 도넛에 슈가 파우더를 잔뜩 뿌려 먹는 것이다. 걷다가 마트 옆에 따로 매대를 만들어서 파는 유기농 올리볼렌 가게 앞에 멈춰 선다. 보통 연말에는 10개씩 대량으로 파는데, 저기, 혹시 낱개로도 파니? 하고 물으니 어린 더치 학생 알바생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러엄~! (윙크) 자, 여기! 하고 종이 봉지에 담아 슈가파우더를 담뿍 뿌려주었다. 결제를 알리는 카드의 알림음이 삐- 하고 울리면, 해피 뉴 이어!! 하는 인사가 마스크 너머 선한 눈웃음으로 돌아온다. 어, 너도!!! 하는 말을 나도 마스크 안에서 힘주어 뱉는다. 안 그래도 목소리가 작은 편인 나 같은 사람은, 마스크를 쓸 때면 특히 더 주의해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답례 인사말을 할 때에는 꼭 눈을 마주칠 것. 나도 너에게 인사하는 거야, 하는 마음을 전달해야 하니까. 그 찰나의 눈빛 같은 순간들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온기를 준다고 믿고 있다.
그 온기를 두르고 길거리를 구경한다. 락다운으로 모든 것들이 닫힌 이 거리에서, 갈 곳이라곤 마트밖에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모여 웅성 웅성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음식과 음료들을 산다. 한겨울인데 아무도 모자와 장갑과 목도리를 꽁꽁 둘러 메지 않고, 야외에서 줄을 서서도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는 날씨라는 것이 어쩐지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이상해, 이상한 기분이야.
내부를 닫고, 한쪽 창문을 열어 테이크 아웃 커피를 파는 카페에 들렀다. 안에 있는 직원이 나를 쳐다보기를 기다리며, 나도 안쪽을 힐끗거리며 기다린다. 이 나라에는 '저기요,'가 없다. 그렇게 대놓고 부르는 일은 어쩐지 예의 없는 행동이다. 레스토랑이든 카페이든 어디든 간에, 상대측에서 눈을 마주쳐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는 항상 빈틈없이 주변을 살펴야 하기도 하고. 플랫화이트 한잔 주세요! 또 힘을 주어 외친다. 마스크를 썼으니까. 위이이잉- 원두 가는 소리. 탁. 탁. 원두를 탬핑하고 머신에 끼우는 소리. 츄르륵, 에스프레소 추출하는 소리와 쉬이이이익- 스팀으로 우유를 데우는 소리를 거치면, 짠. 하고 내 앞에 페퍼 쿠키와 함께 나타나는 작은 커피 한 잔. 리프레쉬가 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말해주면, 또 고마워요, 당신도요! 하고 작은 인사들이 지나다닌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자주 인사를 했던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무뚝뚝한 인간인 나는 아직도 가끔 그런 반자동 인사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할 때가 있다. 놓치지 않고 받은 친절을 되돌려주고 싶어서.
카페 옆은 엊그제 안경 렌즈를 다시 맞추러 들렀던 안경원이다. 그때 만난 캐씨(cathy)가 있나 슬쩍 보았더니 문이 닫힌 것 같다. 캐씨는 안경원에서 새초롬하게 손님이 들락날락하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강아지다. 소형 셰퍼드(?)처럼 생긴 캐씨는 너무 순해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침착한 아이였다. 처음엔 인사를 하려고 손을 살짝 내밀었더니 킁킁 냄새를 맡고 그 옆에서 가만히 있길래 목덜미와 등을 슬슬 쓰다듬어주었더니 금세 누워서 배를 보여주던 녀석. 어서 나를 쓰다듬으렴!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너 아무나한테 이렇게 배를 보이면 어떡하니, 생각하면서 열심히 등과 배를 쓰다듬는다. 아구구구, 좋아~? 손에 짧은 털들이 밀려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 역시 강아지는 남의 집 강아지가 최고지 하는 실용주의적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녀석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쓰다듬을 멈출 수 없었다. 잠깐 시력 검사를 하고 올라왔더니, 녀석이 의자에 앉아있는 내 다리에 온 몸을 기대어 찰싹 붙어 선다. 아아, 이 묵직한 무게감과 온도를, 사랑이라고 내 마음대로 막 불러도 될까. 사람들은 이래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거구나. 그날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려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캐씨가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네가 다시 꼬리를 흔들고 힘을 주어 몸을 기대 오면 나는 아마 안경점에서 영영 못 떠날지도 몰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사이버 도서관 전자책 관심 목록에 꽂혀 있는데 인기가 많아서 예약을 하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책을 읽기 전이라도 알 것 같은 미래가 있다. 다정한 것들은 스스로 살아남을 뿐 아니라 그 다정함들이 모여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뭐 그렇게까지 거창하냐고? 그냥, 내 생각이다. 판데믹 시대의 락다운 시절에도 지나가는 인사, 강아지의 온기, 눈 맞춤 같은 것들이 모여서 아,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지 하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더라. 다정함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까. 새해는 좀 더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 나가고 싶다. 나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