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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Nov 17. 2021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2

[미술관 노동자의 관찰일기] 05. 환대와 보안 그 사이 




사람들은 겉모습과 행동, 눈빛으로 생각보다 다양한 기운을 전한다.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떤 예측을 해야 하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환대와 보안을 함께 신경 써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말하지 않아도 티켓을 내밀거나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는 사람과 

상황을 개의치 않고 큰 소리로 떠들거나 작품에 무턱대고 손부터 대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성향이니까.




옷차림보다는 행동과 뉘앙스가 더 명확하겠다. 토요일 아침부터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힙합 음악을 커다랗게 제멋대로 따라 부르며 전시장을 헤집고 다니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눈빛이 조금 풀린 듯한 여자를 나는 판단(judge)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라색 스키니 가죽 바지가 번쩍이는 아래 징이 가득 박힌 십 센티 굽의 하이 부츠와 화려한 퍼 코트를 입고 스모키한 눈 화장을 짙게 한 채로 팔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는 저 관람객은, 움직일 때마다 쩌억 쩍 뻣뻣한 에나멜가죽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굽이 쿵쿵 바닥을 울렸다. 


반대쪽에는 진(jean)에 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어떤 노부부가 있다. 최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동시에 예측해야 한다. 관람객이 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하여. 




어린이의 케어도 그렇다. 

대게는 보호자가 전시장 입구에 오자 마자 아이를 안아 들었다면, 그것은 그 관람객이 충분히 아이를 케어하겠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게 아니라면 손을 꼭 붙잡거나. 하지만 아이가 어디로 뛰어도 자신의 눈 밖을 벗어나도 콜백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삐- 유의해야 하는 시그널이 되겠다. 


얼마 전, 국제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있었다. 어린이 한 팀, 십 대 한 팀. 두 그룹은 같은 학교지만 나이대가 달라 예술 선생님 두 분이 각 한 팀씩을 인솔해오셨다. 십 대들은 사실 거의 전시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앉을 수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찾아 널브러져서 각자 폰을 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반면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하늘을 찔렀다. 선생님, 이거 봐요! 우와아아아아, 여기요! 선생니임, 우와아아! 아무래도 어린이 단체는 조금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인데, 오오, 노련한 예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남다르게 케어하셨다. 자아, 손은 뒤로! 이렇게 뒷짐 지세요, 그렇다고 앞으로 넘어지지는 말고! 자아, 손 뒤로 하고, 눈으로만 보는 거예요, 눈으로만! 이동하면서도 빠르게 나머지 꼬마들이 어디에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셨다. 거기 세 명, 이쪽으로 오세요! 자, 눈, 눈으로만 보는 거야. 만지지 말고-  


건드리면 쉽게 망가질만한 설치물들이 많은 전시였다. 시키는 대로 손을 꼭 뒷짐 진 채로 궁금해 어쩔 줄 모르는 눈빛으로 꼼지락 대는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는데, 다행히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이 관람이 종료되었다. 이 정도의 케어라면 스무 명도 두렵지 않다. 두 분 선생님은 정말 프로였다.




의외로 커플이 온 경우도 극명하게 다른 본연의 모습이 종종 드러나곤 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말이나 옷차림으로 '내가 지구 최고로 똑똑하고 멋지니 넌 보고 듣기만 해' 하는 잘난 척 형(꽤 많다)과 자신의 데이트 상대에겐 극도로 친절하지만 그 외의 타인에게 무척 예의 없는 형, 아니면 당사자들끼리는 매우 분위기가 좋지만, '우리는 예술에는 관심이 없지, 단지 있어 보이는 데이트 장소에 온 것뿐'형 등이 있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어디든 개의치 말고 넌 예쁜 표정만 지어, 그럴듯한 작품사진 찍어줄게'형과 그 앞에서 적극적으로 포즈를 잡으며 '전시는 내 사진의 뒷 배경일뿐'이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모델형은 주로 함께 전시장을 누빈다.(결코 간단한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곤란한 것은 역시 뭐든 툭툭 건드려보고 싶어 하는 '툭, 툭'형이다. 






사실, 정해져 있지 않아도 대부분의 관람객 동선은 비슷하다. 정형화된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금세 패턴이 읽힌다. 사람들은 대게 비슷한 부분에서 멈칫하고 비슷한 부분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또 비슷한 부분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므로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한 번 만져나 볼까아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딩동댕! 당신은 '남들이 다 하는 생각을 똑같이 하는 것'에 당첨되었다. 직원들은 이제 그런 관람객에 이골이 난 상황이므로 당신이 손만 뻗어도 대략적인 당신의 행동반경을 나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맞다. 그러니 부디, 지켜보는 눈의 유무와 상관없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당당하게 전시만 관람하시기를 부탁드려본다.  


혹시 당신이 긴가 민가 헷갈린다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뭔가를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아마 눈에 띄게 안내가 적혀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진짜 궁금하다면, 근처에 있는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면 된다. 아주 기꺼이 친절하게 다가와 답하거나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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