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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26. 2022

트라우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feat. resilience workshop





쾅- 타아아악!!!


크지 않은 강당을 가득 울리는 소리였다. 뭔가 커다란 쇳덩어리를 어딘가에 내려치는 소리.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너무 크게 놀라 악! 소리를 지르고 서 있던 제자리에서 튀어올랐다.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한 무엇이 올라왔다. 강사는 워크샵 중간에 언제든지 불편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참여를 멈추고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눈물을 눈에 가득 담은 채, 쿵 쿵 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강당 밖의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고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몹시도 피곤한 얼굴을 한 당황스러운 표정의 공포에 질린 여자가 거기 있었다. 나 왜 울어?






강당에 있던 열댓 명의 워크샵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일종의 공격적인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것은 resilience workshop(회복 탄력 워크샵)으로 일종의 랜덤한 대중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안전과 상황 대처력을 기르기 위해 미술관에서 전문가를 초청해서 주최하는 워크샵이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미술관에도 점점 빌런들이 횡포를 부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강사는 무엇을 공격적인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 긴장이 높아진 하이텐션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미술관에서 필요한 공격정 행동 대응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같은 실용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키가 2m쯤 되는 전직 경찰이었던 큰 덩치의 더치 배우가 상황에 대한 예를 보여주기 위해서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사는 이미 우리에게 그의 겉모습과 아우라에 대해서, 그리고 연습의 의도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해 주었고, 우리는 분명히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따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그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공격적인 행동의 사례를 보여주기도 전에 갑자기 뒤에서 철로 된 쓰레기통 뚜껑 같은 것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일종의 기선제압 인가. 콰아아아앙! 거대한 소리였다. 다른 참가자들도 분명히 움찔하며 놀랬을 것이지만, 그중에 나처럼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은 스스로에게 가장 당황스러웠다. 내가 분명히 쉽게 놀래는 사람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른 건 나뿐이다. 심장이 쿵 쿵 쿵 쿵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눈물이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하는 자신을 진정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내 몸은 왜 이렇게 반응하지. 나는 남들보다 꽤나 사운드에 예민한 사람이다. 큰 소리가 나면 그것이 어떤 소스이건 간에(사람이건 사고이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잠깐 놀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공격받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그것이 나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더라도. 그리고 쉽게 놀란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놀라는 대회가 있다면 내가 1등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부분에 예민한 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상담을 받으러 가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다른 사람들은 큰 소리에 나만큼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한참 동안 사람들이 왜 저렇게 큰 소리에 아무 반응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지 의아했던 적이 많았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다. 집에서는 자주 큰 소리가 났다. 내 머릿속에는 자동적으로 '큰 소리=싸움, 욕, 부친의 화, 부정적인 것, 불행,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폭탄' 같은 신경회로 고속도로가 만들어졌다. 큰 소리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고 또 눈치 보게 만들었다. 거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큰 소리는 뭐든 나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뇌 속의 고속도로는 한 번 뚫리고 나면 멈출 줄을 모르고 거침없어졌다.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 하고 머리를 울리는 충격이 올라왔다. 그동안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놀랄 수는 있지, 근데 이렇게까지 반응한다고?  모든  연습을 위한 짜여진 각본이라는  알고 어떤 공격적인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예상을  상태에서도? 트라우마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깊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순간에 쉽게 촉발되어  몸을 지배한다.


다른 사람들은 꽤 잘 견뎌내고 있었는데, 나만 이렇게 취약한가.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이래. 놀란 강사와 참가자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원래 큰 소리에 좀 예민해,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거든. 그런데 나도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는데 그게 여전히 거기 있었던가봐. 한참 진정돼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자마자 눈물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강사는 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락다운 시절에 집에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이 소음 문제였다. 하루에 16시간씩(그러니까 자는 시간 빼고 전부) 전화통을 붙들고 통화를 하는 하우스메이트와는 결국 척이 졌다.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 문을 쿵쿵 닫고 바닥을 걸을 때마다 망치질하는 행동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인과 사는 건 지옥이구나. 잊고 있다가도 번번이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에게도 물었어야 했다. 내가 정말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건가. 또 내가 트러블의 원인인가.


그런데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트라우마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남아 거기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다. 괴로움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동안의 고통이 어쩐지 정당하게 인정되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깨닫는 것은 발견일 뿐이야, 취약성의 발견. 나는 나를 어떻게 소음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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