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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06. 2019

인생의 매뉴얼이 필요할 때

 [쓰기 6일]





손으로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자, 엄마가 왜 그렇게 머리를 만지느냐고 물었다. 

- 아니, 그냥, 머리가 짧으니까 습관처럼 머릿결을 정리하게 돼. 

- (외)할머니도 맨날 그러시더니, 너도 그러냐... 

..어쩔 수 없지 뭐, 할머니도, 엄마도, 나도 머릿결이 다 똑같은데. 안 그래? 



할머니와 엄마와 나는 다른 점이 훨씬 많겠지만, 단 하나, 머릿결만은 쌍둥이처럼 닮았었다. 굵고 힘이 센 반곱슬 머리카락, 새까만 색, 남들의 두 배쯤 되는 숱 덕분에 미용실에 갈 때마다 미용사들은 늘 좀 기겁을 하곤 했다. 숱이 되게 많으시네요, 까만색으로 염색하셨나 봐요, 머리카락이 힘이 세서 파마약/염색약이 잘 안 먹어요, 등등. 어느 정도냐고 한다면 할머니가 여든이 넘으셨을 때에도 머리가 반백 정도로 검은 머리가 많으셨고, 엄마는 환갑이 지났어도 흰머리는 10%도 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이점은 두 사람 모두 짧은 커트머리지만 한 번도 그 흔한 '아줌마 파마'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숱 많은 반곱슬 머리라 그대로 두어도 초라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어른들은 그런 머리카락을 두고 복 많이 받은 것으로 알라고 했지만, 어린/혹은 젊은 시절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갖고 싶었다. 얇고 가느다래서 억세지 않은, 그래서 차분하게 찰랑대는 머리. 소위 자연갈색이라 불리는 옅은 색의 머리칼. 비 오는 날이면 잔머리가 하늘로 용수철처럼 솟아오르거나 육 개월에 한 번씩 마법의 '매직 스트레이트'펌을 하지 않아도 삼각 김밥처럼 되지 않는 머리. 엄마가 할머니 봐봐, 이게 얼마나 좋은 머리카락인데, 너 나이 들면 할머니한테 엄청 감사하게 될걸? 할 때마다 십 대의 나는 내 머리카락 싫어, 나중에 말고 지금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를 외쳤었다.



이제는 안다. 유럽의 석회수 덕분에 머릿결이 상한 데다 귀찮아서 짧게 자른 내 머리카락도 나이를 먹었는지 조금씩 더 얇아지고 숱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미용실에 가면 까만색으로 염색을 했냐거나 남들보다 숱이 많으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흰머리는 일 년에 대여섯 개쯤 뽑는 것 같다. 최근에는 탈색도 한 번 견뎌내는 기적을 이루었다. 벌써 친구들이 정수리에 숱이 줄고 있어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게 평생 동안 듣던, 할머니께 감사해야 할 거란 이야기가 이렇게 뒤늦게야 실감이 난다. 그러네, 엄마 말이 맞았네. 진짜. 



한국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엄마, 할머니가 생각나? 할머니가 보고 싶어? 묻지를 못했다. 물어보면 괜히 엄마가 슬플까봐, 잠잠해진 호수 같은 마음에 돌을 던지는 일이 될까봐, 아니면 엄마가 혹시라도 슬퍼지면 내가 감당할 수 없을까봐. 아닌가. 엄마는 할머니 이야기를 누군가에겐 하고 싶지 않았을까. 딸로서 그 마음을 알아줘야 했던 건 아닐까.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낼 수도, 감출 수도 없어서, 가끔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눈동자만 뱅글뱅글 돌렸다. 어떻게 하는 게 정답이었을까. 이런 상황에 정답이란 게 있긴 한가. 



가끔, 아니 자주, 인생에 매뉴얼이 있었으면 한다. 꼭 그대로 따라 하진 않아도 적어도 참고 정도는 할 수 있는 매뉴얼. 이럴 땐 이렇게 하면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다, 그런 것. 인생에는 처음 겪는 일 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마나 많은 처음을 극복하고 나름의 답을 만들어가며 살아갈까. 어느 누구라도 언젠가 한 번씩은 겪을 일인데, 모두에게 처음이라니, 가혹하다. 누가 힌트라도 주면 얼마나 좋아, 덜 당황하고 덜 힘들게. 

앞으로도 엄마와 나는 이 짧고 단단한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할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 엄마에게 슬픔보다 좋은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바램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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