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분도 아니고 30분도 아닌 20분 동안 무언가를 해보자고 마음먹은 건, 다른 분들과 같은 이유다. 10분은 좀 짧고, 30분은 좀 긴 느낌. 10분은 해도 한 것 같지 않을 것 같고, 30분은 매번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 같고.
사실 예전부터 내게 20분은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최소 단위의 시간이긴 했다. 이때 성취는, 대단한 무엇일 필요는 없다. 그저 20분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면 결국 맞닥뜨리게 될 변화쯤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한동안 나는 초연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다. 세상만사에 안달복달하기가 너무 지겨워졌달까. 특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삶이 멈춰버리는 것이 싫었다. 그렇다면 초연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턱대고 명상을 시작했다. 내 방 벽 앞에 방석을 하나 깔아 놓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했다. 20분 동안이었다. 나중엔 1시간씩 하기도 했지만, 나는 요즘도 가끔 명상을 해야 한다면 20분을 한다. 그냥 20분이 가장 적당한 시간 같아서다. (그리고 난 여전히 그 무엇에도 초연해지지 못했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하루에 2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난 유발 하라리가 아니다. )
집중력이 떨어진 탓에 예전만큼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아 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내 목표는 간단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분 동안만 책을 읽자. 20분 동안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책을 읽자. 이후엔 너가 원하는 것 다 해도 된다. 유튜브도 마음껏 해라. 20분만 지키면 된다!
20분이란 시간의 의미. 이 의미를 내게 강하게 각인시켜준 책이 한 권 있다.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란 책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자인 저자가 1년간 매일 20분 동안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를 연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말한다. 아마추어는 완벽할 필요 없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즐기는 데에도 약간의 노력은 필요하다. 하루에 얼마간이라도 무언가를 연마하려는 노력.
나보다 백만 배쯤은 바쁘게 살고 있는 저자는 매일 틈틈이 20분씩 피아노를 연습했다. 해외 출장을 가면 호텔 라운지에 있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피아노를 치고, 어쩔 때는 길을 걷다가 무작정 피아노 가게에 들어가 전시된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 연습한 끝에 저자는 마침내 쇼팽을 완주해낸다. 아마추어의 실력으로. 하지만 너무나 멋지게. 이 책을 읽고 '오, 역시 20분이면 충분하구나!'하고 생각했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최소 단위의 시간.
그 뒤로 나는 삶이 막막해질 때마다(삶이 막막한 느낌은 어찌나 자주 들던지.)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삶에 너무 부담 느끼지 마. 20분이면 돼. 20분만 꾸준히 하면 그게 뭐든 이룰 수 있을 거야. 엄청 대단하게 이룰 필요 없잖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이뤄도 되지. 어떤 일을 매일 3시간씩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성공 공식은 나도 잘 알아. 나도 한때 말콤 글레드웰 오빠를 참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서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해보도록 해. 그게 무엇이든.
물론, 이렇게 생각만 했지 뭘 실행한 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마음속엔 언제나 '20분이 선물해줄 작고 소박한 변화'를 꿈꾸며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달, 또 삶이 막막해진 김에, 20분을 생각하게 된 거였다. 나는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필통에서 칼과 연필을 꺼내 한 손으로는 칼을 잡고 한 손으로는 연필을 눕힌 뒤 연필을 깎았다. 이제 나는 방금 깎은 이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20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