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coming!
밤공기가 벌써 차다. 아니, 이 동네는 애초에 더웠던 적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올해에는.
한국은 이미 30도를 훌쩍 넘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내내 20도를 넘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여름이라고 해도, 나는 여전히 긴팔을 입고 있고.
세계적인 규모의 재즈 페스티벌이 이번 주말에 열리기에, 여기저기서 음악 행사가 풍년이다. 재즈 팬들에게는 꿈같은 큰 행사 중 하나라 작년에는 큰 마음을 먹고 얼리버드 티켓을 끊었다. 정말 좋았는데, 사실 아무리 락이 아닌 재즈 페스티벌이라 할 지라도 삼일 내내 뮤직 페스티벌에 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엄청 힘든 일이라는 것을, 또 뒤늦게서야 깨달아야 했다. 이미 서울 재즈 페스티벌과 자라섬 페스티벌을 통해 삼일권 얼리버드 티켓이 금액적으로는 언뜻 유리해 보이지만, 실은 체력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으면서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때도 셋째 날 즈음, 이미 쉰 목소리로 택시를 잡는 나를 기사님이 걱정을 해줬던 기억도 난다. 이런 목 상태로 굳이 공연을 또 보러 가야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흔치 않은+훌륭한 공연을 볼 수 있는 티켓이 남아 있는 걸. 나는 본전에 꽤 목을 매는 사람이다.
행사 규모에 걸맞게 표 값이 상당히 비싸고, 주머니 사정은 가난하기 때문에 올해는 패스하기로 했다. 또 이제는 지역주민으로서 비싼 값을 치르고 공연장에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 작고 소소한 행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대신 그것을 즐기기로 했다. 동네에 있는 재즈 카페에 가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보통 instrumental jazz를 더 선호하지만, 오늘은 보컬이 있는 밴드 음악이다. 무대도, 카페의 크기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라 바로 코앞에서 라이브 밴드의 음악과 호흡을 지켜볼 수 있다. 티켓값 5유로와 맥주 한 잔, 2.90유로로 한 시간의 라이브 공연을 본다.
라이브 공연에서는 현장을 즐기려는 편이지만, 가끔씩 이 기분을 그대로 영상이나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 폰은 여전히 한국산이고, 그러면 사진을 찍는 순간 커다랗게 찰칵하는 소리가 날 것이고, 그 순간 빛나는 화면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보이겠지,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면, 왠지 그냥 마음을 접게 된다. 어차피 어두워서 사진을 찍는다 한들, 지금 이 분위기와 일렁이는 마음까지 남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커다랗게 찰칵 소리를 내고 사진을 찍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의 보컬은 좀 쑥스러움을 타는 것 같다. 바로 앞줄의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멀리 허공을 본다. 웬일이지,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 컨택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데 보통. 카키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컨버스를 신은 평범하고 젊은 금발의 남자. 이 나라에서라고 뮤지션이 쉬운 직업은 아니겠지. 젊은 뮤지션의 삶에 대해서 오지랖 넓게 한번 상상해본다. 아니, 지금 당신이 남한테 오지랖 부릴 처지가 아닐 텐데? 하는 마음의 소리는 다음번에 새겨듣는 것으로 하고.
대부분의 공연은 Thanks for coming here 같은 말로 마치게 된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정도. 자신의 무엇인가를 과정으로, 결과로 보여주는 사람들의 인사. 저의 000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따뜻한 에너지와 공감과 응원 같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여름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늘어난 낮의 길이뿐이다. 밤 열 시가 넘어서야 지는 해가 너무 긴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새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찬찬히 깔린다. 해가 가장 긴 유월이 지났으니, 금세 겨울이 오겠지. 이 동네는 북쪽에 가까워서 겨울이 되면 해가 무척 짧아진다. 4시쯤이면 이미 해가 뉘엿뉘엿하고, 혹독한 날씨가 이어지는 계절이 오는 것이 벌써 무섭다고 하면 엄살같을까. 한국에서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다면 이런 계절감에는 조금 더 둔했을지 모르겠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내일도 별다르지 않은 삶에서 날씨가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자전거와 함께 계절을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나는 매일매일의 온도와 빛에 예민해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해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겨울이 빨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투정이다.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맥주 한 잔과 한 시간의 재즈, 그리고 서늘한 밤공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