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body can heal itself

항생제를 쓰지 않는 네덜란드식 화상 치료기

by 틂씨

항생제 없는 화상 치료기


항생제 없는 화상 치료기

일요일 저녁이었다. 그날따라 저녁을 해 먹기 귀찮아서 간단하게 피자를 데워먹으려던 참이었다. 원래 오븐도 겁이 많아 거의 사용한 적이 없고, 냉동 피자를 먹어 본 적도 없다. 그날따라 왜 그랬더라. 아, 마트에서 피자 박스를 쌓아 두고 할인행사를 하길래, 이참에 오븐을 한 번 써 볼까 싶었지.


오븐 속 철망에 은박지를 깔고 냉동 피자를 얹었다. 박스에 적힌 설명대로 220도로 예열하고 10분쯤 구웠을까. 적당히 익은 것 같은 피자를 꺼내려는데 도우의 뒷부분이 은박지보다 컸던지 철망에 늘어 붙어 잘 떨어지질 않았다. 뜨거운 오븐의 공기에 당황해서 꺼내려고 끙끙대는데, 지켜보던 하우스 메이트가 그냥 철망 자체를 꺼내보라고 훈수를 둔다. 아아,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너무 위험할 것 같잖아? 그런데 아무리 당겨도 피자는 철망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고, 오븐의 열기는 쉴 새 없이 안경을 덮쳤다. 나는 배가 고팠고, 그저 이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


겨우 철망을 꺼내 피자를 떼어내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철망을 맨 손바닥으로 짚었다.

몇 초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순간적으로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냉장고 문을 열고 냉동실 벽에 손을 갖다 대었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차가운 곳이 거기였으니까. 아,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이 벽에 붙어서 안 떨어진다. 손을 덴 순간보다 더 당황했다. 개수대의 물을 뿌려 억지로 손을 떼어내고 보니 그 부위 피부가 노랗게 변했다. 공포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손바닥에서는 열이 난다. 정신 못 차리고 울고 있는 나를 보던 하우스 메이트가 검색을 해보더니, 손을 얼음이 아니라 흐르는 물에 담가야 한단다. (그렇다, 화기는 찬 물에 빼야 하는데, 난 몰랐다.) 그런데 이미 얼음에 닿았던, 미친듯한 화기가 올라오고 있는 손은 찬 물에 담가도 전혀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흐르는 물이 뜨겁게 느껴졌다.


몇 시간이 지나도 손바닥 열기가 너무 안 빠지고 계속 후끈거리는 데다, 얼음에 닿았던 부분이 붉게 변하고, 딱딱해지고(stiff), 약간 마비된(numb) 것처럼 느껴지고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prickling/tingling) 느껴져서, 한쪽 손을 물에 담근 채 나머지 손으로 빠르게 구글 검색을 해보았다. 뭔가 동상의 증상과도 비슷하다. 화상을 입은 피부가 다시 동상을 입은 걸까? 그게 가능한가? 냉동실에 있던 순간이 얼만큼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손에서 계속 열기가 올라오는데 동상이라면 더 이상 차갑게 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동상에 걸린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해서 썩어버리면 어떡하지. 별의별 처참한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너무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났다.


일요일 밤에는 모든 장소가 문을 닫는다. 메디컬 센터(Huisartsenpost)에 연락을 해서 차근차근 증상을 설명했더니 응급상황은 아니니(그럴 리가! 이렇게 아픈데?!), 피부는 계속 찬 물로 식혀서 화기를 빼고 paracetamol(파라세타몰, 진통제의 일종)이나 두어 개 먹고 자란다. 자고 일어나서도 아프면 내일 아침 병원(Huisart/G.P, 가정의학과)에 가보라고. 증상으로 봐서 동상은 아니고 2도 화상, 3도 화상(/심재성) 까지는 아니니 걱정 말란다. 그래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혹시 잘못 진단한 건 아닐까, 이렇게 심각하게 느껴져도 막상 방문하면 별로 해주는 것이 없다는 더치 홈닥터의 악명만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계속됐다. 그렇게 아침을 기다리는데,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손바닥에 물집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게 되는 것도 너무 공포스러웠다. 뜬 눈으로 지새운, 인생에서 손꼽히는 가장 긴 밤 중 하나였다.






8시 반이 되자마자 울면서 집 근처의 홈닥터를 찾아갔다. 의사는 불행히도 너는 매우 아프겠지만, 이것은 다행히 2도 화상이다. 만약에 통증이 없으면 그게 정말 무서운 거라고, 그땐 3도 화상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소독도 별 다른 처치도 없이, 바셀린 잔뜩 발린 거즈로 손을 감아주면서 수포(물집) 터트리지 말고 그냥 두란다. 2-3일 정도 후에 붕대를 푼 다음엔 바셀린으로 피부만 촉촉하게 해 주고 그대로 자연 치유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아프면 진통제 먹으라고, 그건 괜찮다고.


Your body can heal itself.

뭐라고, 자연 치유?! 몇 번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생제(antibiotics)도, 소독(disinfection)도, 화상 연고(ointment)도 필요가 없느냐고 물어도 그렇단다. 그건 과잉진료(over-treatment)란다. 한국 같으면 소독부터 하고 습윤 드레싱에 물 닿지 않게 하라 하고 약부터 주지 않았을까 싶지만, 여기는 네덜란드고 그는 나의 담당의이다. 아무렴, 나보다야 의사가 잘 알겠지.


*여기서 잠깐, 네덜란드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Huisart(GP)라는 홈닥터가 가정의학과처럼 일반적인 1차 진료를 본다. 거주 등록된 우편번호에 따라 집 근처로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되어야 전문의에게 찾아갈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야 진료를 볼 수 있고, 막상 방문해도 '자연치유'를 선호하기 때문에 보통은 따뜻한 물/차 많이 마시고 파라세타몰 하나 먹고 쉬라는 것이 처방의 전부라는 이야기(혹은 진실)가 있다. 여간해서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다. 확실히 과잉진료 및 무분별하고 과한 약 처방은 없는데, 신속한 한국식 의료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당황스럽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이 나라에서 화상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흉터 하나 없이 깨끗이 나았다(물론 오래 걸린다)는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궁금해진다. 어째서 대처가 이렇게 다른가. 우리는 정말 필요한 방식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 걸까? 인터넷의 영문과 한글 검색의 결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일단 한국에서는 2도 화상 이상일 경우 무조건 병원에 가라고 적혀있다. 병원에 가면 소독 및 습윤 드레싱을 해주고 항생제 및 화상 연고를 처방해준다고.


두 나라의 의료 시스템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하다. 그런데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이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치식의 사회적 신뢰 및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말인즉슨, 이 곳에서는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언제나 눈치 보지 않고 병가를 낼 수 있다. 아픈데 굳이 나와서 바이러스를 퍼트리며 일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행위로 취급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벼운 감기로 회사를 쉬겠다고 하면, 나태/나약하다고 소문이 나겠지. 심하게 아파도 어떻게든 수액이라도 맞고 회사에 나와 일을 해야 제 몫을 해낸다고 생각할 테니까. 한국에서 특히 가벼운 치료는 '스스로 병균을 물리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닌 '빨리 증상이 사라지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어서 나아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니까.






별 다른 처치를 해주지는 않았어도 의사는 친절했다. 내가 하는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다 들어주고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그동안 크게 아픈 일이 없어서 병원에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에 크게 배웠다. 의료 보험은 소중한 것이구나. 다치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안경을 벗다가 안경도 부러졌다. 여벌의 안경이 없는 나는 새 안경을 맞춰야 한다. 모든 불운은 어쩜 이렇게 한꺼번에 오는 걸까.


+ 첫 24시간은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수포는 거의 48시간까지 부풀어 올랐다.

+ 너무 아파서 3일 정도 진통제를 복용했고, 무서워서 씻지도 못하고 있다가 5일 만에 샤워를 했다.

+ 1주일 정도 지나고 나니 수포의 크기는 그대로이지만 고통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앞으로 2주 정도는 상처 근처에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 2주가 지나면서 수포가 마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인간의 삶으로 되돌아 가는 중.

+ 3, 4주 차에 접어들면서 마비된 것 같던 피부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한 달 여만에 수포가 터지고 굳었던 피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손바닥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손바닥은 엄청나게 쓸모가 많은 부위였다. 운동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긴소매 옷을 입기 시작하니 소매가 거슬린다. 샤워와 머리 감기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설거지도 한 손으로만 했다. 오른손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그즈음에는 안쪽 피부가 많이 아물어서 아직은 붉고 연하지만, 앞으로 나아지겠구나 싶은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얇은 피부가 제대로 단단해질 때까지는 바셀린과 밴드로 습윤 환경을 지켜주고, 자외선도 차단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흉터가 많이 남지 않는다고. (구글이 말해주었다.)



아- 아- 아- 그리하여 나의 지난해 여름은 이렇게 부주의에 의한 화상을 치료하는 데에 전부 소모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의사의 말대로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하게 나았다. 그땐 정말 시간이 갈까 싶었는데. 손을 감은 커다란 거즈와 붕대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나, 데었어. 근데 여기 의사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두래. 더치들은 원래 그래? 불평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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