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날씨는 어떤가요?
유럽에 살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날씨 이야기다.
그만큼, 휘황찬란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여름이라 할 수 있는 6월, 7월이 되도록 낮 기온은 20도를 간신히 넘기 일쑤고, 해가 지면 금세 서늘한 추위가 들이닥친다. 뭐랄까 한국의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에 비하자면 선선하고 생활하기 딱 좋은 날씨이긴 한데, 오래 지내다 보니 여름 다운 여름 날씨가 그리울 때가 있다. 워낙 흐린 날이 잦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다 옆에 있는 나라라 세찬 바닷바람이 불고, 그 바람은 때때로 페달을 밟고 있는 자전거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하루에 소나기가 내렸다가, 우박이 내렸다, 다시 비바람이 쳤다가, 구름 사이로 쨍한 해가 빛났다가, 다시 폭풍우가 밀려오고, 다시 비가 그쳤지만 바람이 부는 날씨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기도 한다.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한국에서는 주로 오늘과 내일의 날씨가 어떤지 묻는다면, 여기서는 앞으로 삼십 분 후의 날씨와 한 시간 후의 날씨를 비교한다. 내일의 날씨 따위 알 바가 아니다. 당장 삼십 분 후에 비가 올지 안 올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당일과 일주일의 날씨를 보여주는 일기 예보 앱 외에도, buien alaram이라는 말하자면 비 예고를 해주는 앱이 있다. 앞으로 한 시간 반 내외로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 비가 올 것인지를 예고해준다. 개인적으로 필수 더치 앱 일 순위로 손꼽을 수 있다. 이동을 하기 전엔 항상 미리 알람을 체크한다. 짧은 시간 내에 비가 올 예정이라면 그전에 외출을 끝내야 한다. 나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면 비바람에 우산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우비를 입는다. 내 노오란색 우비는 겨울에도 입으려면 좀 커야 한다고 가게 주인이 추천해준 사이즈였는데, 너무 큰 사이즈였던지 입고 있으면 약간 우장 씌워 놓은 병아리 같이 보인다. 이렇게 오래 쓸 줄 알았으면 네이비 컬러로 샀을 텐데. 여튼, 외출을 하려던 찰나에 비가 오면, 다시 알람을 확인한다. 대게 쏟아지는 장대비는 삼십 분 내에 그치기 마련이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오리니. 약속이나 마음을 조금 여유롭게 잡는 편이 좋다. 날씨는 늘 내 맘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슨 여름이 이렇게 우울하고, 회색이냐며 친구들과 불평을 해댔다. 더치들이 여름마다 열심히 햇빛과 바다를 찾아 바캉스를 떠나는 데에는 전부 이유가 있는 거라며.
*네덜란드에서 공식적으로 불평할 수 있는 것은, 음식(진짜 별 맛도 없고, 사람들이 음식에 관심이 별로 없다)과 날씨다. 더치들도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외국인이 불평하는 것에 큰 불만을 갖지 않는다. 사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 나라에는 에어컨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극단적인 여름 날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을 팔지도 않는다. 커피에 얼음을 넣으면 밍숭맹숭해서 어떻게 먹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얼음 넣은 커피를 파는 곳 자체가 많지 않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 스타벅스 정도? 스타벅스도 유럽에서는 큰 맥을 추지 못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의 커피가 더 싸고 맛있고 흔하다. 판매되는 커피의 종류도 좀 다르고. 대부분은 스타벅스를 비싸고 양 많은 미국식 커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게 큰 역이나 공항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에 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이상기후가 유럽 전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여름도 곳곳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한국에 비하면 온도 자체가 극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원래 이 동네의 날씨에 비하면 무척 기록적인 더위다. 네덜란드도 이번 주가 폭염이다. 지난주 내내 20도 언저리였는데 갑자기 낮 기온 38도라니. 이건 한국에서도 대프리카 정도는 되어야 경험하는 온도 아닌가. 물론 이 곳은 한국만큼 습도가 높지는 않아서 그늘에 들어가면 그래도 끈적이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하물며 25도만 넘어가도 흐물흐물 녹는 더치들에게 이건 공포의 숫자다. 웬만한 큰 마트나 공공 기관이 아니고서야 에어컨이 없는 곳이 다수이고, 아이스크림도 이탈리아식 젤라또 아니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 이 나라의 햇빛은 한국보다 훨씬 더 강해서, 이 정도 날씨가 되면 나라 전체에 orange alarm(날씨 경보)이 뜬다. 자외선 지수가 매우 높으며 맨 살로 15분 이상 밖에 있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오. 이쯤 되면 선글라스는 패션이 아니라 기본 옵션이다. 잠깐 길거리를 걸었을 뿐인데, 깜빡 잊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목 뒤가 익어버린 것 같다.
몇 주 전쯤, 한 친구가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와서는 날씨가 너무 좋고, 모든 것이 다 그림 같더라며 살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우연히 날씨가 좋았던가 봐, 매일 날씨가 그렇지는 않아. 라고 차마 말해주지 못했다. 어차피 살아 볼 것도 아닌데 굳이 환상을 깰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이제 북유럽 사람들이 왜 그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조명, 가구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발달시켰는지 알 것 같다. 왜 겨울만 되면 우울증을 호소하고 비타민 D를 챙겨 먹는지도.
그러니까, 네덜란드 날씨가 어떻냐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예쁜 사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만 살짝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