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어느 추운 퇴근길이었다.
신사동에서 강남을 지나 경기도로 향하는 광역 버스 안에 구겨져 겨우 자리를 잡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야 했던 날. 갑자기 손발이 저려오면서 멀미가 심하게 오는 것 같고, 토할 것 같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식은땀과 함께 오한이 왔다.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조금만 참자, 일단은 집에 가자,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결국 견딜 수 없어서 무작정 양재의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당장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어 길가에 주저앉았다. 퇴근길이 한창인 7시에서 8시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칼바람에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제 갈길을 가기에 바빴고, 나는 길가에 주저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찬 공기를 맞으니 정신이 조금 나고 괜찮아지는 것 같았지만 그뿐, 더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한참 앳된, 막 신입사원이나 인턴쯤 되었을까 하는 젊은 여자분이 내게 와서, 괜찮아요? 어디 아프세요? 119 불러드릴까요? 한다. 아뇨, 119까지는 안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기다려 보려구요. 그쯤 답하면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했던 여자분은 이 추운 날 나를 길에 그냥 두고 가지 못하겠다며 그럼 괜찮아질 때까지 함께 있어주겠다고 했다.
어디가 부러지거나 숨이 멈추거나 한 건 아니었으니까, 119를 부를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몸의 상태는 뭔가 이상하지만 멀미도, 체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정확하게 무엇이 원인인지를 모르니 어떤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금요일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영업을 하는 병원이 있을까. 그분은 자신도 퇴근하는 길이었을 텐데 내 옆을 한참이나 지키다가 근처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를 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혼자 찬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으면 정말 서러웠을 텐데, 그래도 그분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 고마움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기절하거나 쓰러진 것도 아니고, 발작이라 할 만한 증상이 뭔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제와 뒤늦게 생각해보니 어쩌면 공황이나 불안 발작의 일종은 아니었을까(라고) 추측해본다. 그 날 내과에 갔었는데, 멀미도 체한 것도 아니고, 감기에 걸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만 했다. 아아, 스트레스는 얼마나 중요한 만병의 원인인가. 결국 그다음 날도 출근은 하지 못했다.
당시에 나름 규모가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박봉이었지만 그만큼 야근도 많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또라이도 우리 팀에는 없었다. (물론 다른 팀에는 있었다) 일에 대한 특별한 욕심이 없다면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다만 그곳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사의 규모만큼 딱딱한 매뉴얼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 보통의 업무였다. 누군가 나서서 뭔가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아무도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창의적인 일을 하겠다고 학교를 두 번 다녔는데도, 여전히 나는 오퍼레이터일 뿐이었다. 당연했다. 그게 회사라는 것의 생리이고, 나는 그 회사의 일개 부품일 뿐이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안다고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상 회사를 때려치우고 뭔가를 할 자신도 없었다. 당장 유학 자금과 포트폴리오가 뚝딱 생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매일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에너지를 아끼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자 놀랍(지않)게도 순식간에 티가 났다. 실수가 늘었고, 실수가 늘어날 때마다 자괴감도 같이 늘었다. 넋을 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허술한 직원이 되어 갔다. 회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다니며 퇴근 후에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단 하루도 회사에 마음을 온전히 준 적이 없었다. 이 쥐꼬리만 한 월급과 안정감에 안주해 버릴까 봐 겁이 나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회사를 불편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다니던 시절이었다.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견디며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밀고 밀치는 사람들이 다 적군 같았다. 매번 전투에서 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버스와 지하철에 올라탔다. 오늘은 제발 조금이라도 사람이 적게 타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이미 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버스에 또 어떻게든 사람들이 올라타는 장면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옆으로 멘 가방이 최소한의 방패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다른 사람의 살에 닿지 않아도 되겠지. 모두가 힘든 시간이지만, 퍼스널 스페이스가 중요한 사람인 나에게는 유독 매일이 더 끔찍했다. 키도 덩치도 작은 나는 늘 이리저리 채였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하는 마음이 공존하던 하루하루였다.
그것이 정확하게 공황 발작이었는지 아닌지를 이제 와서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최소한 한 두 번쯤은 그런 발작을 겪는다고 했다. 그 정도는 특별하지 않은 일이라고. 그저 스트레스가 몸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정확한 정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그저 몸이 허약해서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단다. 가끔 일어날 수 있는 발작이 장애로 발전하는 선은 그것이 본인의 일상생활을 얼마나 방해하느냐의 정도 차이라고 했다. 우울이나 다른 정신적인 문제처럼, 증상의 빈도와 강도에 따라 그것이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느냐 아니냐의 경계를 넘어서면 전문가를 찾는 편이 좋다고. 다행히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
한국의 밤은 기묘하다. 낮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를 갖고 있다. 늦은 밤에 버스에만 올라타도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밤의 낭만과 새벽의 센치함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낮 시간의 고됨을 밤의 기운으로 잊는 것 같다. 새벽 공기가 주는 감성과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나라에 와서 밤의 낭만을 잊었다. 이 동네에서는 가끔 있는 파티를 제외하면 특별히 밤새 술을 마시며 놀 일이 많지 않다. 5시쯤 되면 웬만한 업무는 전부 끝난다. 덩달아 대중교통도, 늦게 까지 여는 바도 많지 않아서 자연히 저녁 식사 이후의 시간은 집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지내거나 지친 심신을 달랜다. 밤이 되면 자고, 아침에 해가 뜰 때 일어난다. 대부분 '새벽 감성'을 느낄 만큼 오래 깨어있지 않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밤의 센치한 기운을 잊었다.
대신 심신의 건강함을 얻었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누적된 피로는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더 이상 낮에 졸지 않는다. 기차나 버스에서도 눈 감을 일이 별로 없다. 하루 일곱 시간 이상 잠을 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난다. 자전거로 이십 분이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더치를 몰라서 답답한 순간이 많지만, 때로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말들까지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그래서 낯선 언어가 백색 소음처럼 느껴질 때의 평온함도 분명히 존재한다. 당연히 완벽하지 않은 세상이지만, 가끔 극단적인 어떤 순간을 떠올릴 때 안도의 숨을 쉰다. 삼십 년 넘게 몸에 익은 효율성과 빨리빨리 정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종종 그 조급한 마음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게의 일상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거나 먼저 가세요, 하고 웃을 수 있는 여유로 채워졌다.
한국에서 센치한 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중에 하나였다. 온 세상이 고요해지는 시간, 그제야 나만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를 듣거나 글을 썼다. 차분해지는 공기가 좋았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시간. 그 시간마저 없으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센치한 밤을 잊게 되어 좋다. 그럭저럭 평온한 낮 시간을 살아가므로, 굳이 그런 감성의 순간을 따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괜찮은 삶.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으며, 늘 같은 불평을 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 계나의 친구들에게 공감하고, 동시에 그들을 혐오했다. 그 모습이 나 같아서. 그렇게 싫다(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계나처럼 무엇인가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아직은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시도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