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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Nov 26. 2019

Looking for a room/housing

유럽 살이의 실체 #1. 집 구하기의 실전 




왼쪽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온다. 벌써 몇 주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뜨고 뭔가 집중하려고 정신을 가다듬다 보면, 금세 알아차리게 된다. 왼쪽 윗 눈꺼풀의 한쪽 끝이 파르르 하게 떨려오고 있다. 미세한 떨림이라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에게는 적당히 거슬릴 정도로 느껴진다. 다른 일을 하느라 신경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할 때는 모르지만, 주변이 고요해지고 생각을 집중해야 할 때면 떨림이 느껴진다. 그때마다 다음에 꼭 영양제를 사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눈꺼풀 떨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흔한 것은 두 가지의 이유 아닐까.(추측이다) 스트레스, 혹은 부족한 마그네슘. 굳이 지금 나의 상태로 따지자면 둘 다이다. 마그네슘이나 다른 미네랄의 섭취도 부족할 것이고, 스트레스 또한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까. 집을 구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했다.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면 일곱 번째가 될 것이다. '불확실한'삶을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언제 또 이사를 가게 될지 몰라 무겁거나 깨질 수 있는 종류의 물건은 웬만하면 구입하지 않았고, 여전히 방 한 칸을 채울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짐은 만들지 않는다. 무엇을 사기 전에 가진 것 중에 가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먼저 버리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반 강제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게 되어 있다. 오래 여행을 다니는 동안, 트렁크 하나로 이동하는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여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 임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해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 높을수록 좋은 집에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법칙이겠지. 네덜란드의 대도시는 집 부족 현상으로 넘쳐나는 세입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은 매번 전쟁을 치르듯이 집을 구한다. 그 안에서 나도 제한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 높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먼저, 포기할 수 있는 조건과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나누어 본다. 

쉐어 하우스 살이에 지친 터라 혼자 살 수 있다면 최고의 조건이 되겠지만, 아마도 빠듯한 예산으로 지원금 없이스튜디오를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인 보다는 2/3인 쉐어 하우스를 찾고 싶지만, 순전히 운에 달린 일. 위치, 시내와의 거리, 거실 없음 정도는 타협할 수 있다. 일조권과 부엌과의 접근성 및 청결도, 수압과 소음 확인은 포기할 수 없다. 기본적인 생활 -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싸는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특히 거실이 없다면 방의 환기와 일조량은 더욱 중요해진다. 창의 위치와 크기, 라지에이터의 위치와 기능까지. 게다가 나는 추위도 잔뜩 타니까.


집 A.  ★★★☆☆

지금 사는 도시의 옆, 위성 도시에 위치한 쉐어 하우스였다. 일단 멀다. 장점은 창이 남향으로 나 있고, 주인이 1층에 살면서 관리하는 집이라 깨끗하고 안전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방 자체가 길고 좁아서 안에 있을 때 꽤나 답답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리고 4인이 쉐어하는 공간에 욕실+화장실 하나뿐이어서 분명히 이용 시간이 겹쳐서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주인 부부에겐 1살짜리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울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불안 요소 중에 하나였다.


집 B. ★★★★☆

은퇴한 더치 집주인과 함께 사는 집. 장점이라면 집주인이 자주 집을 비운다는 것, 그리고 그 가격대에는 드물게 욕실이 방에 딸려있다는 점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집주인이 관리도 상당히 깔끔하게 해 둔 편이었다. 상당히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고 위치도 좋은 편. 사람들이 탐낼만한 조건이어서 바로 뷰잉 약속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망설인 이유는 방이 완전한 북향이라는 점이었다. 주인은 거실을 쉐어하지 않고 부엌만 같이 쓰기를 원했기 때문에 내가 있을 곳은 방뿐이다. 저녁에 잠만 잘 곳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조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긴 편이라 햇빛에 민감하다. 위도가 높은 네덜란드는 한국처럼 딱히 남향을 선호하지도 않고, 동서 향의 집이 더 흔하다. 그런데 북서도 북동도 아닌 완전한 북향. 아무리 그 앞 뷰가 좋다고 해도, 하루 종일 제대로 된 빛이 들지 않는 북향의 집은 생각만 해도 너무 우울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을까? 살아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1년 계약에 싸인을 선뜻 하기 어려웠다. 다른 조건이 다 너무 좋은데도 이렇게 망설여진다는 건 아마도 원하는 선택이 아닐 거라는 친구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이거 하나만 빼면 다 괜찮은데, 하는 그 조건 때문에 언제나 사람은 결국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집 C. ★★★☆☆

최대한 한국인과 사는 것은 피해왔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는 프라이버시 문제가 더 쉽게 불거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집을 공유하는 것만도 고된데, 언어까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쉐어하우스에도 장점은 있다. 일단 유러피안들의 기준과 확연히 다른 청결도 때문에, 대부분 벌레/쥐 문제가 없는 깨끗한 집일 확률이 높다. 위치/청결도는 괜찮았는데, 첫 번째 집과 비슷한 방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몇 가지의 미묘한 집 주인의 뉘앙스가 마음에 걸렸달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이러다 연말에 집 밖으로 쫓겨날 때쯤까지 집을 못 구하면 분명히 이 선택을 후회하겠지만, 무엇인가가 걸리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집 B에 사인하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었나 자꾸 곱씹게 된다. 북향의 집도 창이 크기만 하면 실은 괜찮은 거 아닐까. 직사광선은 안 들어도 반지하에 사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한국에 있을 때 반지하에 살아봤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북향의 집에서 살아본 사람이 없어서, 아니면 나만큼 햇빛에 민감하지 않아서 비교 대상이 없다. 임시의 삶에는 남들보다 선택과 고민과 후회가 잦은 것 같다. 


미세한 눈 떨림은 이상하게도 밖에서 활동할 땐 잘 느껴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영양제를 사려던 계획을 까먹었다. 엊그제 드디어 마그네슘과 비타민 D가 포함된 멀티비타민을 샀다. 왜 항상 종합비타민은 이렇게 역한 냄새가 날까. 늘 코를 막고 인중을 잔뜩 찌푸려야 겨우 약 한 알을 삼킬 수 있다. 이제껏 세 알을 먹었는데, 아직까지 눈 떨림은 그대로이다. 집을 구하면 나아질까. 아니, 집 다음에도 퀘스트는 끊임없이 생길 텐데. 스트레스에 이렇게까지 취약한 인간형이면서 왜 이렇게 떠도는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작년 연말에는 파운드 케이크를 구웠는데, 올해는 지붕 아래만 있어도 감사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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