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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테리어브라더스 Dec 28. 2017

공간에 관한 뻔하지만 변하지 않는 생각 by 전범진

[브라더스 칼럼_vol.1_전범진(스튜디오베이스)]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공간디자인은 무엇인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시절, 개강 첫날 학생들에게 항상 던지던 질문이다. 이십 년 넘도록 계속해서 내게 하고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경험이 쌓여 가면서 대답은 성숙해 가겠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내게 다시 물어본다.

경주 양동 관가정(觀稼亭) ⓒ주명덕

공간


우리는 항상 공간 속에서 산다. 공간이라는 것은 꼭 벽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우리를 둘러싼 기운 같은 것이다. 그 기운은 충만함을 주기도 하고 공허함을 주기도 한다. 충만한 기운이 깃든 공간에서는 시각을 초월한 기쁨을맛 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충만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의 끝에서 시각적 몰두가 왜 공허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지만 항상 유혹은 있는 법. 시각적 자극에 곁눈질하며 후회할 앞날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공간디자인에 있어 물리적인 비우기의 작업은 일종의 정제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를 염두해야만 한다. 그 관계는 공간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비우다 보면 어느 적절한 순간 멈춰지고 관계의 관념들로 채워진다. 시각적으로 비워져 있다는 것과  관념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함께할 때 비로소 공간은 완성된다.


콜룸바 미술관(Kolumba museum, 2007, Peter zumthor)


장식과 디테일


공간 속의 장식과 디테일은 ‘가니쉬’(음식의 외형을 돋보이게 하려고 음식에 곁들이는 것) 같은 것이다. 장식이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하면 공간은 경박하고 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당한 장식은 유머로, 우아함으로, 세련됨으로, 중후함으로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또한, 장식과 디테일은 적당한 기능과 만날 때 지혜로운 빛을 더 하기도 한다. 공간의 본질에서 시작된 장식과 디테일에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공간은 우리의 몸과 같고 출입구 손잡이를 잡는 행위는 악수를 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작은 손잡이 하나가 주는 감성은 사소한 장식물의 의미를 뛰어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식은 공간을 풍요롭게 해 주고 디테일은 공간의 깊이를 더 해주며 우리에게 또 다른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젓가락 갤러리 저집(2013, 스튜디오 베이스)


이야기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단순하든 복잡하든 또는 쉽든 어렵든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가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것조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며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공간에 배어든다. 공간디자이너는 잘 배어들 수 있는 빈자리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용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잘 그려 나아 갈 수 있도록 조력해야 한다.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연장하되 풍요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이다. 디자이너는 이야기의 결말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이것 역시 비우기의 일환이며 열린 결말은 자연스럽게 사용자가 채우게 된다. 그런 공간은 풍요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며 공간의 수명을 연장해 준다.


<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2011>  via wikimedia Commons


관계


사람은 혼자일 수 없다. 불가항력의 홀로된 상황에서도 대상을 만들고 관계 지으려 한다. 무인도 생활을 그린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척(톰 행크스 분)과 배구공 윌슨을 봐도 알 수 있다. 관계는 항상 서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한다. 캐치볼을 할 때 던지고 받는 공의 구질이 동일할 수 없듯 관계는 끝이 없고 새로움의 연속이다. 사람은 공간과 긴밀하게 관계한다. 벽 따위의 현상을 인식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 대부분 공간(空間), 즉 비어있는 사이를 이해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는 나와 교감하기도 하고 물리적 공간과의 관계를 형성해주기도 한다.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한다. 추운 겨울, 모닥불이 만든 빛과 열의 공간이 따뜻한 정서의 관계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디자이너가 만드는 공간 역시 그런 관계의 고민이 느껴져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진심


공간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냥 디자이너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소양과 시선을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거짓 없는 순수한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30여 년 전쯤 미대입시를 준비하느라 화실에서 아그리빠 석고상을 그릴 때였다. 강사 선생님이 학생들을 세워 데생을 평가하는데 같은 석고상을 그렸음에도 각자 자신의 얼굴을 닮아 있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타인의 공간을 디자인한다 해도 그 공간에는 자신이 투영된다. 물론 핀터레스트 따위의 복제된 이미지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찾는일조차 어려움이 되어버렸지만 자신에 대한 고찰과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닮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진심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진심의 태도가 바탕이 된 공간에서는 사람이 보일 수 있고 또한 그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 나도 그런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글 | 전범진(스튜디오베이스)


전범진 소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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