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신 지음, 『아파트가 어때서』 출간후기
양동신 선생님의 책 『아파트가 어때서』가 지난 11월 6일, 서점에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선생님도 소식을 전하고, 그간 선생님의 글들을 애독했던 많은 분들이 축하와 응원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하도 시끌시끌 많은 분들이 새롭게 선생님을 알게 됐는지, 쌤이 본인 페북이 잠시 다운된 걸 알리는 캡처를 보내주셨다. 일해라 페이스북...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언제나처럼 킬리만자로에서 먹이를 찾는 표범마냥 좋은 저자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양동신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됐다. 글을 하나 둘 읽다가, 수십 개의 글을 멈추지 못하고 탐독했다. 돌이켜보면, 어어? 이런 스타일은 처음이다? 같은 깊은 인상이 있었다. 새로움을 의도하지 않은 새로움, '나는 글을 잘쓴다'는 작가적 자의식이 결여된 담백함, 그리고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스며들 수밖에 없는 관성과 '쪼'가 없는 글들이었다.
신기하리만큼 없었다. 이어 선생님의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알게 되고, 쌤이 써온 <서울신문> 칼럼들을 읽은 후 미팅도 요청 드리며 자연스레 이번 책을 함께 준비하게 됐다. 나로서는 부끄럽게도 공학을 전공한 직업적 엔지니어의 긴 글을 별로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엔지니어가 글을 잘 쓰면 이런 식의 논리가 구축되고, 이런 근거들을 댈 수 있고, 이런 문장이 전개될 수 있군,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그들은 콘크리트를 직접 타설해보고, 바닷속의 함체에서 죽을 고비도 넘겨보고, 어쨌든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사람인 건 분명하니. (부디 공학도와 엔지니어들이 더 많은 대중서를 쓰는 세상이 오길... 공학도여, 이 책을 읽자!)
'아파트가 어때서'라는 문장을 책 전면에 내세운 건 (양쌤 사모님의 단호한 추천에 기댄)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양쌤을 이미 아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물론 그의 이번 원고는 아파트만을 다루는 내용은 아니다. 아파트라는 거주 형태를 통하여 우리가 문명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바꿔주는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란, 한 사회의 인프라에 관한 대중적인 편견과 몰지각을 깨고 우리가 ‘토건 사업’에 관해 손쉽게 규정하고 비판하는 어떤 분위기를 진지하게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아파트가 어때서』는 회색빛의 콘크리트가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바가 얼마나 많은지를 들려주며, 백운호수가 자연호수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였단 걸 알려주는 책이다. 연트럴파크와 안양천과 광화문 대로와 세종시의 공간적인 비밀을 술술 털어놓고,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중경삼림>의 'California Dream'을 흥얼거리며, <응답하라 1988>과 르 코르뷔지예를 하나의 맥락으로 같이 읽을 수 있는 원고다. 강원도 속초에 산불이 났을 때, 전국의 소방차들이 경광등을 켠 채 일렬종대로 한밤의 도로를 달려가던 장면이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인프라적으로 밝히면서...
어쨌든 원고 작업을 하며 이 정도로 많이 배우고, 앎의 기쁨을 누리며 혀를 내두를 수 있어 행복했다. 어깨도 무겁고, 괜히 입도 마르는 것 같고, 어쨌든 간에 이 내용을 더 많이 읽히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어서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편집에 심혈을 기울였고, 출간 한 달만에 2쇄를 찍을 수 있었다. 1쇄를 적게 찍은 것도 아닌데. :-)
작업 중엔 저자가 18만 자에 가까운 원고 내내 지극히 겸손하신지라 약간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 겸손함은 지극히 높은 자존감과 자기 업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자연이란 무엇이고, 인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힘에 의해 빚어진 저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글자를 고르고 책을 만드는 중이다. 어쩌면 책을 만드는 일만큼 '비자연적이고' 인공적인 게 또 있으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지하철과 아파트, 터널과 다리들에 둘러싸인 채 매일매일을 살아가리라. 우린 모두 이 도시의 작동 원리에 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양쌤 덕에 남들보다 먼저 그 앎의 기쁨을 누리며 혀를 내두를 수 있어 행복했다. 이제 많은 분들이 그 기쁨을 함께 누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