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친구의 아르바이트 제안을 듣고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뭐, 그 당시 우리 집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될 만큼 부족하진 안았었지만 물론 풍족한 정도도 아니었다. 여느 가정집들과 다르지 않게 그저 평범한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용돈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고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이 스멀스멀 차오를 때쯤, 그 친구가 다가왔고 그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일상 속에 아르바이트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학교에선 진로에 관한 분야 선택을 했어야 했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남들 다 가는 것처럼 평범하게 흘러가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이든 주변 어르신들은 당연히 내가 예술 쪽이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줄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의 선택을 듣고 다들 의아해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 일반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 = 학업을 포기한 아이라는 편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주변 어른들은 당연히 내가 학업을 포기한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학업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들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고 나서야 없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서류 하나를 들고 오셨다. 그 서류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비를 대주는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다. 그 선생님 눈에는 내가 학비를 대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처럼 비췄던 것이다. 학생을 생각해주는 선생님의 마음은 너무 깊고 따스했으나 헛헛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불쌍해 보였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생각보다 규율이 엄격한 학교를 다녔던 지라, 온갖 학교 규율이 남무 했다. 나는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그 엄격한 규율 속에서는 100점짜리 학생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호출했다. 교무실에 도착하니 선생님은 나를 조용한 구석의 회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너 담배 피우니?"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나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종이의 내용은 금연캠프에 참여하라는 것. '담배를 피우지도 않은 나에게 왜 이런 통지서가 날아왔지?' 의아하여 알아본 결과, 학교 측에서 확인 절차도 없이 벌점이 높은 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모두 통지서를 날린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다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친구들이랑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도 당연히 흡연자로 처리되어 그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에 대한 편견.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이 느끼고 당해봤지만 어른이라고 말을 해도 될만한 나이가 되어 돌이켜보니 그분들은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조금은 이해도 가는 것 같다. 하지만 한 번쯤은 속단하기 전에 먼저 왜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학업은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봐 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