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by 인센토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에는 전영田鍈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40여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 중 문文이란 이름의 첩의 자식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음력 5월 5일에 태어났다. 당시 이 날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를 해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아이가 5월에 태어난 걸 알게 된 전영은 그 아이를 “내다버려라”고 명하였으나 어미는 남몰래 아이를 숨겨 키웠다.


문이 장성하자 어미는 형제들을 통해 아들을 전영에게 보냈다. 전영은 그가 자신이 죽이라고 했던 자식임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이놈을 버리라 했는데 감히 키운 것은 어째서이냐?” 그러자 어미 대신 문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대감께서 5월 5일에 태어난 자식을 키우지 않으려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말했다. “그날 태어난 자식이 문설주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문이 다시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운명을 받습니까? 아니면 문설주에서 받습니까?” 전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이 말했다. “만약에 하늘에서 운명을 받는다면 (아이가 문설주의 높이만큼 자란다고 해서)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문설주에게 운명을 받는다면 문설주를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만든다면 그 누가 닿을 수 있겠습니까?”


전영은 마음이 언짢았지만 아이의 말이 옳았기에 “너는 그만하거라” 말하고 더 이상 아이를 죽이라고 하지 않았다. 훗날 이 아이가 아버지 전영의 자리를 물려받아 전국시대의 지혜로운 지도자로 이름을 떨친 맹상군孟嘗君이 되었다.


* 사마천, <사기>의 ‘맹상군열전’에서




사마천의 <사기>에는 오이디푸스 신화와 비슷한 듯 다른 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아비는 문文이란 자식을 내다버리라 했으나 어미는 몰래 키웠고, 아이는 장성하여 아비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기를 내다 버리라 한 연유가 무엇인지를 아버지에게 묻는다. 어쩌면 칼 끝를 걷듯 긴장감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허무맹랑하기도 한 이들의 문답에 운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숨어 있다.


“음력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가 문설주 높이만큼 자라면 부모를 해친다”는 속설이 있어 너를 죽이라 했다는 것이 아버지의 대답이다. 아들의 이어지는 답변이 아비의 허를 찌르는데 그 속에 담긴 뜻은 이러하다. “큰 일을 하시는 대감께서 한낱 문설주 때문에 이리 영리한 아들을 죽이려 하신 겁니까?”


만일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자 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만 했다면 서자 문文은 훗날 전국시대의 유명한 재상 ‘맹상군’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숙명宿命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풀 수 있는 문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를 되받아쳤다.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의 저자 이상수에 따르면 점을 보는 동양의 고전 <주역>의 “모든 괘사와 효사는 … “X이면 Y일 것이다”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고, 흉한 점괘가 나왔다고 해서 나쁜 것만도 아니다. 조건 X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값 Y는 달라지는 것이다.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다음에는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고리를 공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바꿀 수 없는지를 알아야 한다.” *


우리가 타고 난 것은 바꿀 수 없다. 부모의 재력이나 자신의 재능과 외모는 타고 나는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그러니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안타까워한다 해도 헛된 일이다. 허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운명의 연결 고리’이자 X와 Y 사이의 틈새이다. ‘만약(If)’이라는 조건문의 승부처에서 X와 Y의 간격을 최대한 넓혀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법이자 운명의 고삐를 틀어쥐고 달리는 법이다.




* 이상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에서


** 전국시대의 사상가 순자는 <천론天論>에서 “하늘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밝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이 경계를 “천인지분(天人之分)”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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