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먼 옛날, 호숫가에 커다란 인디언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의 외딴 곳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거기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위대한 사냥꾼으로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이 사람을 '볼 수 있는’ 소녀는 누구든지 이 사람과 결혼할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시험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저녁 무렵 '보이지 않는 사람'이 돌아올 무렵, 여동생은 호숫가에 와 있는 소녀와 산보를 시작한다. 그리고 소녀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내 오빠의 모습이 보이나요?” 대부분의 소녀들은 보인다고 거짓말을 한다. “보여요”라고 대답한 소녀에게 다시 이렇게 묻는다. “오빠는 어떤 어깨띠를 하고 있죠?” 이에 소녀들이 엉터리로 대답하면 여동생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후에 여동생은 소녀와 함께 오두막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기다리지만,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마을에 아내를 잃은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막내딸은 몸집이 작고 약해 두 언니들은 막내를 심하게 대했다. 특히 큰언니는 벌건 숯으로 막내 동생의 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히기도 해서, 온 몸이 학대로 인한 상처투성이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막내를 ‘누덕누덕 기운듯한 피부의 소녀’로 부르고 있었다.
드디어 두 언니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집으로 가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기 위해 언니들은 한껏 아름답게 치장했다. 호숫가에서 여동생을 만난 두 사람은 질문에 거짓말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막내도 자신의 운명을 점쳐보고 싶었다. 큼직한 가운을 걸치고 무릎을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모카신을 신은 기묘한 옷차림을 한 채 막내는 언니들의 거센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숫가로 향했다.
여동생이 물었다. “저 사람이 보이나요?”
“물론 보이고 말고요. 아, 참으로 멋진 분이군요.”
“저 사람의 채찍에 달려 있는 끈은 어떤 거죠?”
“무지개입니다.”
“저 채찍 끝에 묶여 있는 끈은 뭐죠?”
“은하수예요.”
여동생은 막내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럽게 씻어주었다. 그러자 얼굴과 몸을 뒤덮고 있는 상처와 때가 말끔히 사라지고, 머리를 빗겨주자 불에 그을려 타버린 머리카락들은 길게 자라 아름다워졌다. 눈은 마치 별 같았다. 여동생은 소녀를 결혼에 어울릴 만한 차림으로 치장해주었다. 드디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드디어 찾았군.” 막내는 대답했다. “네.” 이렇게 소녀는 ‘보이지 않는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
* 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최고(最古)의철학>에서 재인용 및 요약
얼핏 눈치 챘을지 모르지만 이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미크마크족은 유럽인들에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들은 뒤 위와 같이 변형을 시켰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여자 주인공의 ‘수동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제는 ‘재투성이(그림 형제의 독일어 원제는 아셴푸텔Ashenputtel, 영어로는 Ashputtel)’이다. 이것이 프랑스어 쌍드리옹Cendrillon에서 영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신데렐라(Cinderella)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재투성이’ 이야기 또는 부엌데기 신화는 세계 곳곳에서 전승되어 오는 데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전래 동화로는 ‘콩쥐팥쥐’가 있다.
이들 ‘재투성이’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이름 그대로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부엌이라 얼굴은 검댕으로 얼룩지고, 옷은 누더기이고, 몸은 상처투성이이기 일쑤이다. 부엌은 일상의 현장이다. 문명의 근원인 불이 있고, 생명인 밥이 있고, 분주한 삶이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높은 탑에 갇혀 왕자를 기다리는 공주가 아니라,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일하는 생명력의 존재들이다.
‘부엌데기’ 이야기의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 이들이 누추한 현재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운을 ‘감히’ 시험하려 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거센 만류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곳은 궁전의 무도회장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은 사람’의 오두막집이 될 수도 있다. 부엌에서의 ‘재투성이’ 삶이 어찌 고단하고 슬프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이들은 주눅들지 않고, 보이지 않는 ’무지개’와 ’은하수’를 그려낼 수 있는 별과 같은 눈과 올곧은 영혼을 간직한 채 운명의 문을 힘껏 밀어젖힌다.
자, 그럼 재투성이 부엌데기가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