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셴푸텔(신데렐라)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다. 계절이 바뀌고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가 자신의 두 딸을 데리고 오면서부터 아셴푸텔의 기나긴 불행이 시작된다. 새로운 누이들은 소녀를 부엌으로 쫓아내었고 그날부터 그녀는 누더기 옷을 입고, 힘든 일을 하고, 잠도 아궁이 옆 잿더미 속에서 자야 했다. 그래서 소녀의 이름이 ‘재투성이’란 뜻의 ‘아셴푸텔’이 되었다.
어느날 아버지가 시장에 가면서 딸들에게 무엇을 사다줄까 물었다. 첫째가 말했다. “예쁜 옷을 사 주세요.” 둘째가 말했다. “진주와 보석을 사주세요.” 아셴푸텔에게도 물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실 때 모자에 처음으로 닿은 나무가지를 꺾어다 주세요.”
아버지는 두 딸을 위해 예쁜 옷과 보석을 사고, 말을 타고 돌아오다 푸른 수풀에서 자신의 모자에 걸린 개암나무 가지 하나를 꺽어서 돌아왔다. 아셴푸텔은 개암나무를 어머니의 무덤에 심어놓고 하염없이 울었다. 어찌나 울었던지 쏟아져내린 눈물이 나무가지를 흠뻑 젖셨고, 가지는 쑥쑥 자라 어느새 멋진 나무가 되었다. 아셴푸텔은 매일 세번 개암나무로 가서 울었다. 어느 날 작은 새가 날아와서 나무에 둥지를 틀고, 그녀의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켜보고, 소원을 들어주었다.
* 그림 형제의 <아셴푸텔> 이야기 중에서
어릴 적 읽었던 신데렐라 동화책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황금빛 호박마차인데 (이는 디즈니의 각색이라) 그림 형제의 동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림 동화의 ‘아셴푸텔’의 마법은 ‘개암나무hazel tree’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누이들의 화려한 선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아셴푸텔의 눈물과 보살핌으로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난다. 이 나무에 깃든 새들과 개암나무의 도움을 받아 아셴푸텔은 무도회에 참가하여 왕자를 만나게 된다.
조금은 거친 분류이지만 요리를 하는 방법을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미즈 앙 플라스mise en place’인데 이는 제자리에 놓다는 프랑스어이다. 말 그대로 요리를 하기 전에 모든 재료와 순서를 ‘제자리’에 맞게 놓는 사전 준비 작업을 뜻한다. 아침부터 레시피에 필요한 재료를 구비하고, 손질하고, 저녁이 되면 손님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서빙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일사분란한 주방을 연상해보면 된다.
다른 하나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방법일 수 있다. 이는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사용한 용어로 손에 닿는 주변의 재료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뜻한다. 집에 있는 재료를 써서 뚝딱뚝딱 요리를 할 때 우리는 이런 '브리콜라주'의 기술을 이용한다. 만약 단 한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그 과정은 ‘미즈 앙 플라스'보다는 '브리콜라주'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은 ‘이미 부여받은 것’입니다. 어떤 나라의 어떤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는가, 어느 수준의 신체 능력이나 지적 능력을 타고나는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 ‘내던져진’ 형태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쓸 만한 것은 주어진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손에 쥐어진 자원을 활용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놓은 것, 그것 뿐입니다. 이는 ‘이미 이는 식재료’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내놓는 마음가짐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셴푸텔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은 만만치 않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계모와 누이들은 구박을 받으며, 잿더미 위에서 한뎃잠을 자는 삶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엌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받은 나무가지를 정성껏 키워낸다. (우리가 키울 수 있는 것 또한 우리가 지닌 그것 뿐이다.) 비록 재투성이지만 아름다운 존재로 자라난 아셴푸텔이 그러하듯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난 개암나무는 그 자신의 잠재력과 생명력의 또다른 표현이리라. 그리하여 아름다운 개암나무에는 아름다운 새가 깃들고, 금과 은으로 된 아름다운 옷과 신발이 쏟아져 내린다. (Happilly ever after.)
* 우치다 타츠루, <무라카미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