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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O Jun 08. 2020

몸과 마음이 하나가 아니더라고

결국 도수치료받으러 간 사연

한 달 전부터 뒷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연례행사 치르는 것도 아니고..

뒷 목은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며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성질을 부렸다.


3년 전,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목을 돌릴 수가 없었다.

별생각 없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며 칠 뒤에 괜찮아져서 그냥 지냈다. 평소처럼.

멀쩡하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아파서 잠을 잘 못 잤겠거니 했다.

그때 한의사 선생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거 잠을 잘 못 자서 갑자기 그런 게 아니라, 매일매일 쌓이다가 지금 드러난 거예요. 평소 자세 고쳐야 돼요."

그때 그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2년 전, 같은 증상이 또 나타났다.

시간이 없어 병원을 당장 못 갔는데, 며칠 뒤에 또 괜찮아져서 그냥 지나갔다.


1년 전, 또 이놈이 나타났다.

정형외과를 갔다. 도수치료가 좋다길래 받으러 갔다가 엑스레이를 찍게 됐는데 일자목 진단을 받았다.

그 유명한 거북목. 바쁜 현대인 사무직의 훈장 같은 그것.

흰 쇄골 사이로 흰색 1자가 곧게 뻗어있는 모습(목뼈)을 보며, 역시 나 자세가 곧다며 내심 뿌듯해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께서 저게 1자면 안된단다.

자연스러운 C자 커브를 그려야 하는데 심각하게 1 자라고 했다. 일단은 치료를 받아보고 호전되지 않으면 무슨 수술... 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네..? 이러다 금방 또 괜찮아지는데 수술이요...? 목 디스크도 아닌데 무슨 수술씩이나..'

그러고 도수치료를 2~3회 받았는데, 시간도 없고 또 큰 아픔 없는 평상시로 회복이 돼서 병원 가기를 멈추었다.


한 달 전,

목부터 뻗어있는 척추뼈 중심으로, 좌측으로 목과 어깨가 아팠다. 또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두통까지 느껴졌다. 그즈음, 회사 스트레스가 심해져 그렇겠지.. 하고 손으로 조물조물. 며칠을 기다렸더니 통증이 덜해졌다.

근데 평소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이 놈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 아닌가. 인내심을 발휘하여 놈이 사라지길 또 기다렸는데 이번엔 이 놈이 아주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그 후로 몇 주를 더 아프다고 뿔을 냈다.

이 놈이랑 오래 밀당을 하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속이 상했다. 갑자기 세상에 이 통증 놈과 나 둘만 한 편인데 둘이 싸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작년에 그 수술 얘기하던 병원은 내키지 않아 새로 '잘한다는' 병원을 찾아갔다.


"이 정도 좁아지려면 최소 5년은 몸을 방치했다는 거지"


의사 선생님은 나를 나무랐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만 보고 있는 노동자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 많다고, 그래도 몸이 다 이렇게 되진 않는다고. 몸을 노동을 시켰으면 노동이 끝나고 그 노동에 대해 수고했다고 몸을 보살펴줬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마치 몸이 일을 해야 하니깐 죽지 않도록 밥 넣어 주고, 침대에 뉘어 주기만 하는 그런 악덕 고용주의 짓을 내가 해온 것이다. 그 몸이 병들고 아파하고 있는 걸 모른 채.


"우리가 무슨 기계야?! 우리도 사람인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건 내가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자주 하던 말이었다.

마치 자본주의의 악당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처럼 외치던 말이었는데, 내 몸이 나한테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저 아프다고, 이제 신경 좀 쓰라고, 경고신호를 그렇게나 보냈는데 미련하게 불편하다 화내고 인내했다. 인내심을 왜 이런 데다가 발휘했는지.

의사 선생님과 나는 기개 좋게 쭉 뻗은 새하얀 1자를 20분 넘게 바라보며, 그 목뼈의 밑 쪽에 위치한 5번 뼈와 6번 뼈라고 부르는 두 놈 사이 공간이 다른 곳보다 좁아져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내 마음이랑, 실제 내 몸이 하나가 아니더라고. 살다 보니깐 그래."


대학생 시절 들었던 해부학 강의 내용을 방불케 하는 의사 선생님의 기나긴 설명을 끝맺은 말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오며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자세와 꼭 해야 할 스트레칭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제부터 신경 쓰고 몸을 돌봐주지 않으면 지금은 1년 주기로 오는 이 놈이 앞으로는 더 자주 와서 더 오래 머물 거라고, 그러다 보면 고치기는 더 힘들어지고 디스크가 새어 나올 거라는 말도 함께.


내게 내려진 처방은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확실히 다른 것들보다 무거웠다.

목에게 미안해하기. 앞으로 잘 돌봐주기.


그리고 수많은 계획에 또 하나 추가했다.

C자 커브 회복하기. 곧게 뻗은 기개는 무너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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