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지금껏 미루고 미뤄왔던 화장실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대학교 때 수강했던 '병원 미생물학' 수업의 폐해로,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세균이 득실득실할 거라는 생각에 어딘가에 내 몸이 닿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그게 내 방 화장실일지라도. 오늘은 아주 큰 맘먹고 시작한 대청소라 야무지게 고무장갑까지 착용한 뒤, 어느 한 모서리도 내 손과 세제가 닿지 않는 곳이 없게 하겠다며, 화장실과 내가 물아일체의 상태가 된 듯이 청소를 했다. 평소와 달리 오늘 이렇게 화장실의 온 구석과 물건들을 만질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먹음에도 달려 있었지만, 물리적으로 고무장갑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일이다. 거의 자아상실의 상태로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나타났다.
'내 멘탈에도 고무장갑을 씌울 수 있다면..'
아무리 더러워도 고무장갑 덕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듯이
내 내면에도 고무장갑이 씌워지면, 에너지를 갉아먹는 모든 사소한 일들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최진석 교수님의 장자 철학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정확성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함량의 크기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운전하며 가다가 누군가 끼어들었을 때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사람은 그 상황이 자기 전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이 자기의 존엄을 허물어뜨리는 줄 안다. 그 상황이 발생시킨 의미보다 자기의 함량이 꼭 그만하거나 작기 때문에. 자기가 클수록 작은 단위의 일들이 쉽게 다뤄지고,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작은 사람은 신경질이 많고 우울함이 많다. 왜?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거 같아서. 근데 자기 뜻이 크게 되면 이런 작은 것들은 다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다. 그러므로 크기를 키우라. (최진석 장자 철학 10-4. '함량을 키우는 3가지 방법' 강의 내용 中)
정말 자잘해지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자기가 싫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부하직원들을 괴롭히는 관리자들을 보면 자잘하다고 생각했다. 더욱 싫었던 건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이다(나는 관리자도 아닌데..). 그러고 나면 찝찝했다. 강자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꼴이 아닌가 싶어서 꼭 창피함이 몰려왔고, 내 그릇이 왜 이것밖에 안 되는지 괴로웠다.
영상을 보며 방향성을 잡은 것 같아 희망이 일었지만, 희망은 아직 저 멀리 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것뿐. 방향성을 잡았다고 해서 함량이 작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뿅! 하고 함량을 키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현재의 그릇 크기를 가지게 된 데는 각자 이유가 있을 것이라, 각자의 우주이자 각자의 히스토리. 그럼 어떻게 함량을 키운단 말인가, 고민하는데 나의 우주에서 하나의 답으로 생각되는 것이 건져 올려졌다. 몇 달 전 삼촌이 해주신 말씀이었다.
"무슨 운동이든 잘하려면 몸에서 힘을 빼야 해. 힘을 뺀다는 것은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은 축 늘어진 상태가 아니겠지? 그럼 힘을 어떻게 빼겠어. 힘을 빼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어. 자기 스스로 온몸에 힘을 한껏 줘본 사람만이 힘 빼는 방법을 알지."
아, 자잘해지지 않기 위해서 자잘하게 살아보는 수밖에. 하지만 잊지 않기를 다짐한다.
어쩔 수 없이 자잘해지는 매 순간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심연을 들여다 보기. 점점 자잘해지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