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지켜본 나
내 존재를 집어삼키는 듯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 날들이었다.
꼭 여기 브런치에 쓰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어디에든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려고 했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엄청나게 힘든 일은 아니었으나, 그 힘들지 않은 일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여유공간이라도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은 날들이었다. 그 어렵지 않은 것들을 잘 해오던 날들에 갑자기 불안이라는 놈이 슬그머니 노크를 하더니 어느새 자리를 잡고선 떠날 생각을 않았다. 여태 살아오면서 만났던 불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불안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식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정도의 불안 혹은 어떤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유효기간이 끝나버리는 것들이었으며 게다가 그 유효기간은 대부분 짧았다. 내가 만난 불안들이 운 좋게도 그런 영향력 없는 불안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불안을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어떻게든 내게서 쫓아내려 했던 무의식적, 의식적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라도 이번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았다.
먼지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먼지를 붙여 더 큰 먼지가 되듯, 내 안의 불안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마음속을 굴러다니기도 하며 온갖 불안한 요소들을 찾아내어 몸집을 불려 나갔다. 의식주와 관련된 현실적인 것부터 내 생각과 신념들, 그에 기반한다고 믿고선 내뱉은 수많은 말들과 행동까지 얽히고설켜, 이러다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날 것만 같은 비이성적인 생각까지 들러붙기 시작했을 때, 일시정지.
유튜브를 켜고 '명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
한 때 즐겨 듣던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분이 매일 새벽에 라이브로 진행했던 명상 가이드 영상이 있었다. 하루에 하나씩 틀어놓고 명상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마음이 복잡해서 유튜브 어플을 켜는 것도 힘들다는 걸 알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 전 새벽시간뿐이었다. 살면서 그렇게도 시도하고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던 새벽형 인간이 되어갔다. 평소 '의지 다지기'로 시작하던 미라클 모닝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더 잘래'와 '일어나야 해'의 싸움인데, 이번엔 그런 여유를 부릴 상태가 아니었다. 눈을 뜨면 '죽는다'와 '산다'의 싸움이었다. 사실 이건 싸움도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살고 싶었고, 눈을 뜨면 더 자려는 욕구가 올라오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유튜브 영상을 켜고 있었다.
명상을 따라한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명상을 하고서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평화를 찾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문득문득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럼에도 나의 일상과 정상적인 생각을 마비시키는 불안의 핵에서 벗어난 건 사실이다.
근원을 알고 겪는 고통과 모르고 겪는 고통은 차원이 다르다.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끔찍한 꿈을 꾸었던 것을 계기로 교내 심리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더랬다.
처음 상담실 의자에 앉아서 꺼낸 "제가 이상한 꿈을 꿨는데,, 혹시 이런 것도 상담이 되나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시작된 상담은 근 1년을 채우고야 끝이 났다. 당시의 상담으로 삶이 달라지는 전환을 맞을 수 있었는데 그건 물론 삶이 달라진 게 아니라, 내가 달라진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느끼는 심리적 불편감과 부적절감이 사라지니 삶이 훨씬 편안해졌다. 주변 사람들이 달라진 나에게 '심리 상담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를 물어 왔었는데, 1년간 내게 일어났던 변화들을 구구절절 말할 수가 없어서 한 마디로 축약해서 말해주었다.
"어떤 문제로 고통스럽다고 생각해봐. 상담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닌데,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를 알게 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꽤 고통에서 벗어나져"
명상을 하며 '명상' 그 자체의 효과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가이드해주시는 명상 스승님이 한 번씩 하는 말이 내 머리를 쿵 하고 때렸다.
거친 생각을 조심하세요
내 불안을 무럭무럭 키운 문제 중 하나는 '거친 생각'이었다. 거친 생각이 뭐냐면 말 그대로 생각을 섬세하게 하지 않고 거칠게 해 버리는 것인데 내 경우는 이미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버렸음을 알았다. 수많은 거친 생각 중 하나만 예로 들자면 이런 식이다. '회사 싫어 - 퇴사할 거야'라는 식의 생각. 이 거친 생각이 왜 문제가 되냐면 삶을 나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회사가 싫은 것'과 '퇴사'는 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구분해야 할 문제이다. 둘 사이에 무수히 많은 섬세한 생각들을 넣어야 했다. 회사가 왜 싫은 것인지,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그 부분을 해결하면 될 일인지, 내가 감당해볼 만한 것인지, 퇴사를 한다면 내 삶의 어떤 부분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도움을 받을 부분은 있는지 등에 대해.
이 섬세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답을 유보한 많은 질문들은 불안의 기세를 등에 업고 서로 하이파이브하며 단단히 엉켜버린다. 섬세하게 생각하고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것은 어떤 문제에 맞서 내 삶이 정지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나의 불안에는 수많은 거친 생각들 사이에 존재했어야 할 섬세한 생각들이 답도 없이 예술의 경지로 꼬여있다. 이리도 거친 생각들로 살아왔으니, 눈빛은 불안할 수밖에.
왜 불안한지를 알게 되자 속절없이 무너져 가고 있던 나는 불안의 중심부에서 한 발짝 나올 수 있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스케일의 불안을 겪으며, 그에 걸맞은 것들을 배웠다.
가장 먼저 불안이라는 놈에 대해 배웠다. '답 없음, 모르겠음'으로 일관하다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함수와 같다는 것, 그보다는 섬세하게 풀어가려는 삶의 태도가 승리의 열쇠라는 것.
더 많은 것들도 배웠는데 이건 앞으로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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