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끝은 있는 것인가?
이전 글에 쓴 것처럼, 얼마 전 대학으로 왔고 한없이 자율적인 공간에서 즐거이 내가 궁금했던 것에 몰입하고 알아가는, 좀 거창히 말하면 태어나 처음으로 학문 자체로 내 삶을 채우며 살고 있다.
그렇게 여유로운 일상의 한달을 지내던 중 나는 우연히 한 용역 공고를 보게 된다. 어쩌면 학문으로 뭔가 재정적으로 조그마한 이득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주변에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에게도 베풀고 싶었던 것 같아서 이런 기회를 찾아다니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용역 공고에 대해서는 사실 상 대한민국에서 우리 기관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판단했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일주일 만에 지원할 만한 체계를 만들어 냈다. 오랜만에 직장인처럼 빡센 일상이 힘이 나기도 했고 차분한 대학 교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도전적인 것을 찾았다는 안도감마저 득었다.
일전에 직장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한 이후의 느낌에 중독된 것 같다고… 그래서 몸이 상할 것임에도, 부족한 시간 앞에 밤에 졸음으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어도 도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과제 앞에서 덜 말성이게 되는 것 같다고.. 그런 맘으로 나는 이렇게까지 내 삶을 이끌어 온 것 같다. 시골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에도 도전과 그에 따르는 어려움마져도 소중히 여겼다.
그 도전의 과정 중에 내가 몸서리처질 정도로 싫어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게 바로 갑질당함이다. 나는 참 갑질당함이야말로 순수한 영혼에 대한 독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서는 작은 세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갑질이 있었고 누구나 알듯이 직장에서는 온갖 종류의 갑질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 앞에서도 가까운 사이부터 시작해서 여러 종류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내 도전의 목표는 그래서 갑질에서부터 해방됨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내 삶과 미래, 운명의 주재자가 되야겠다는 소망이 있고 내 도전들의 종착점이 어떤 구체적 이상향이라기보다 세상의 갑질을 피할 수 있는 나의 작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대학에선 그 갑질에서 좀 해방되려나 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연휴를 앞둔 주말 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용역 공고를 낸 기관이었다. 내용은 용역 공고의 내용을 쪼개는 형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덧붙여 이건 매우 솔직하게 말해주는 배려아닌 배려를 드러냈다. 여러 의심이 들었고 할말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구나… 였다.
아 대학에서도 이놈은 나를 어김없이 찾아 오는구나.
이런 일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렇게 노력해도 내 삶 앞에는 여전한 갑질당함이구나, 그리고 따르는 감정이란 함께 도와준 팀에게 미안함이었다. 이러저런 통화와 카톡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난 다시 생각에 잠겼고 이 갑질당함은 언제야 끝이 날 것인가라는 의문에 잠겼다. 답을 모르겠지만 피터 틸의 제로투원의 이야기가 머리 속을 맴돈다. 그리고 결국 삶의 진정한 가치란 혁신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가슴 아리게 느낀다.
‘경쟁은 루저들을 위한 것,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