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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an 10. 2018

방랑견

개에 관한 소고

#사진. 들개(Misawa, Stray dog) / 다이도 모리야마(Daido Moriyama)


자꾸만 따라온다. 개는 보는 맛이 아닌 맡는 맛으로 산다던데, 킁킁… 어쩌면 오랜 세월 몸에 베인 익숙한 체취 때문이리라. 동물과 사는 사람이 곧잘 그렇다. 어딜 가나 동물과 부킹 한다. 뿌듯해하며 묘한 득의감도 느낀다. 여느 곳이라면 아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배를 문지르며 배낭의 귀한 비상식량도 나눴으리라. 그런데 인도에선 좀처럼 그럴 맘이 생기지 않는다. 인도의 방랑견(犬)이다.  


인도에선 어지간한 존재감도 더한 존재감 속에 묻히는 법이다. 특별함에도 등급이 있을까 싶지만, 그 속에도 덜하고 고만고만하고 더한 것이 존재했다. 발이 달린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인도의 거리에서 신성하다는 소는 도처에 흔하다. 양 떼가 서슴없이 차도를 가로막고, 동물원 밖 일상으로 나온 원숭이와 코끼리와 만난다. 그곳을 메운 인파의 두서없는 배회만으로도 이미 숨이 가쁘다. 자연히 개의 존재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존재감 없긴 닭들도 마찬가지다. 그 범상했던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외치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이런 곳이라면 생은 고귀하지만 반대로 매우 흔하다.


진귀함에 따라 나뉘는 서열. 언뜻 이  계에 존재하는 계급의 숙명을 표현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다. 개 따윈 제아무리 비범해도 결코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존재감이 없으니 자존감도 낮다. 더운 낮에 굶주리고 무기력한 나머지 내내 잠을 청한다. 시원한 밤엔 하이에나와 다를 바 없이 몰려다니다가 무언가로 허기를 달랜다. 방황하는 밤의 광견들을 피하고, 화장터의 개들은 멀리하게 된다. 아무리 동물과 살아온 사람들도 알면 그러하다.


하지만 5천만의 하나였던 우리도 13억의 하나로 들어가며 미미한 존재가 되긴 마찬가지다. 항상 스스로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지만, 어린 시절의 몽상에서 깨어나면 깨닫게 되듯, 인도에서 특별함이나 비범함이 아닌 자신의 평범함에 시선을 두게 되고, 그러자 인도의 방랑 견들도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더럽고 초라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감이 없는 방랑 견들이지만, 총애받는 여염집 애완견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녀석은 과거 어떤 왕족의 환생인 듯 하와마할 같은 궁전에서 한가하게 잠을 청하고, 성과 요새의 주인이었던 듯 느긋하게 성채를 거닌다. 거리의 고행자 곁에 나란히 앉은 그들은 흡사 수행 견처럼 보인다.


어느 골목에나 있다. 주인 있는 개보단 주인 없는 방랑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이 혼잡한 세계의 숨은 주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낮엔 아무데서나 잠을 청하고, 밤엔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니 어둠의 제왕이다. 순한 눈매는 어느 순간 붉고 날카롭게 번뜩인다. 스스로 자유를 얻어 해방된 검투사처럼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몸에 딱 맞는 털옷은 드문드문 파먹긴 해도 여전히 거칠고 빳빳하다. 고수의 내공이 절로 느껴진다. 나는 방랑견을 피해 잰걸음으로, 인도인들 틈으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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