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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Jan 03. 2018

안개 빛 고성(古城)

동상이몽

# 아그라 포트 / 정인채


안개로 가득 찬 성 안은 고요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조심스레 걷는다. 성벽을 따라 길을 더듬으니 아늑한 오솔길로 이어지고 곁으로 한 줌 가는 강물이 흐른다. 그곳에 마냥 주저앉고 싶다. 그런 찰나 안개는 소리 소문 없이 이내 주위를 에워싼다. 나는 내 마음속 갈등의 신을 소환한다.


일행도 마찬가지다. 안갯속에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생각에 잠긴다. 하루하루의 여행이 쌓여갈수록 서로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무언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새로운 변화에 몸을 내던지는 일인지라 늘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낯선 누군가와 조우했다. 그러므로 우린 처음부터 줄곧 함께였지만, 어느 순간 처음과 같은 우리일 수 없었다. 


복잡한 마음이 뒤섞인 채 각자 인도라는 동상에 여행의 이몽을 꾼다. 지금에 의문을 품고, 조심스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본다. 욕심이나 변덕이 아닌 진정 자신을 위한 여행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무릇 여행에서 서로의 뜻이 엇갈리면 누군가는 참고 양보하지만, 인도에선 도무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인 기분이고, 자칫 쉽게 만회하기 어려운 미련을 남길 것이라고 느낀다. 


실로 그럴 만하다. 우린 막 전설적인 미련을 목격한 터였다. 며칠 사이 왕과 왕비의 전설적인 사랑이 낳은 무덤과 그 뒤를 유유히 흐르던 강을 보았고, 이제 스스로의 자식에게 유폐되어 쓸쓸한 말로를 보낸 왕의 처소에 이른 참이었다. 성을 가득 메운 뿌연 안갯속에 왕의 심정이 되어 강 저편 흐릿하게 그려진 왕비의 무덤을 바라본다. 문득 상실과 미련의 여운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처럼 후회를 답습하고 싶지 않은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폐왕의 미련을 상기하며 나름의 여행을 고심하는 것이리라. 


요동치는 마음으로 섣불리 갈등의 열꽃을 피우기보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기엔 짙은 안갯속이 더없이 좋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에 이어 아그라 포트로… 당시 내겐 일행이 있었지만 그곳을 떠나면 곧 상황은 달라질지도 몰랐다. 여행이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법이지만, 그땐 그것이 여행의 중요한 고비이자 고민이었다. 안갯속 고성은 그런 고민 속에 잠겨 있었던 기억이다. 고민도 결국 긴 과정 속 하나의 점일지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다시 그 안갯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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