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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채 Dec 28. 2017

엽서

인도 여행자의 인연

#인도 깨랄라 주 코발람


“잘 지내요? 네팔로 향한다고 했는데… 무사히 도착했을지 궁금하네요. 부디 끝까지 몸 건강하고 계획한 대로 좋은 여행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약속대로 남인도로 내려와 있습니다. 남인도는 못 가봤다면서 적어주신 주소를 보고 이렇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고 보니 참 재밌어요. 당신이 이 엽서를 받아볼 때쯤엔 우린 모두 이미 여행을 마쳤을 테니까요. 우린 과거의 여행을 축복하는 동시에 추억할 테죠.” 


한 줄 정도 망설이다가 계속 글을 잇는다. “지금은 남인도의 휴양지입니다. 머무른 지 일주일 정도 지났어요. 여긴 참 평온하네요. 사람도 적고 거리도 한산합니다. 하루하루 느긋하게 보내며 흘러가는 여행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어요. 이젠 어딘가 탐험한다는 것보단 쉰다는 느낌이 커요. 불과 얼마 전인데 지나온 여행이 까마득해요. 항상 조마조마하며 긴장하고 숨 가빴는데 말이죠. 어떤 의미에선 좀 심심하고 섭섭합니다. 참 이상하죠? 혼잡한 도시에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더니 이런 곳에 오니 도시가 그리워집니다.” 


마음속으로 ‘실은 당신이 그립다’는 글귀를 썼다 지운다. 그렇게 썼다가 다시 새롭게 써야 했던 엽서가 이미 여러 장이다. 해변 방갈로의 파라솔, 미리 구해 둔 몇 장의 엽서들이 하나둘 사라져 가자 해는 기울고 인내심이 바닥난 모기떼가 나를 거세게 힐난한다. 엽서는 시적이어야 하는 것을,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소심한 마음처럼 글은 내려갈수록 오밀조밀 작아지고 이젠 끝을 맺어야 한다. 나와 인도 그리고 당신을 떠올려본다.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 경유지에서 함께 보낸 시간, 당신이 건네다가 바닥에 쏟아진 피넛들, 델리 공항에서의 아쉬운 이별, 엽서를 보내라며 적어준 노트 맨 뒷장의 주소, 기차역 예약 창구에서의 재회, 떠나기 직전 함께 본 인도 영화, 열차 안으로 들어가 당신을 배웅하던 순간, 이대로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려던 순간의 망설임, 당신에게 건네준 가방용 체인, 끝내 홀로 멀어지던 기차…


망설이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다. 굳은 각오로 비좁은 엽서의 마지막 한 줄을 채운다. “여행하는 동안 줄곧 당신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어디쯤 일까 하고. 그리운 건 도시가 아니라 당신…”  


그 시절, 내게 인도와 사랑은 동의어였다. 

비록 사람의 인연은 변덕을 부려도 난 여전히 인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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