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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인천 Jun 07. 2022

아무도 울지 않는 밤 -5-

옴니버스 소설 | 굿모닝인천 6월, Vol. 342

밤의 한가운데

글 안보윤 │ 일러스트 송미정



종일 날이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준은 편의점 유리창에 가느다란 궤적을 남기는 빗방울들을 바라 보았다. 봄비라기엔 바람이 부산했고 소나기라기엔 빗방울이 잘았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이 제 몸집만 한 물 얼룩을 찍어냈다. 편의점 앞 도로와 골목이 새까맣게 젖는 건 순식간이었다. 기준은 창고로 들어가 가장 저렴한 가격의 비닐우산 다섯 개를 꺼내왔다. 가판대 빈틈에 우산을 꽂아두고 편의점 출입구를 활짝 열었다. 급작스러운 비에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허둥대는 기색이 역력한데도 사람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만 뛰었다.


기준은 아침 일찍 면접을 보고 온 참이었다. 서류 전형이 통과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면접 일자가 공지되자마자 기준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간부터 바꿨다. 사장은 마뜩잖아 하면서도 진열대에서 목이 긴 양말 두 개를 꺼내 기준에게 선물로 주었다. 

“합격했다고 바로 그만두고 이러는 건 아니지?”

농담 반 염려 반이었던 사장의 말을 떠올리자 쓴웃음이 났다. 면접은 엉망이었다. 인턴사원 7명을 뽑는 중소기업 면접에 백 명이 훌쩍 넘는 지원자가 몰려왔다는 사실부터가 기준에겐 압박으로 느껴졌다. 인턴 기간이 끝난 뒤 2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공지가 있었음에도 그랬다. 기준은 어쩐지 질린 기분으로 대기실을 서성이다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면접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보다 못한 면접관 하나가 기준을 불러 세웠을 정도였다. “내가 자네 대학 선배로서 충고해주겠는데 말이야.” 면접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우린 신입 사원을 뽑는 거지 윤리 선생을 뽑는 게 아닐세. 사람이 좀 둥글둥글하고 융통성 있게 굴어야지 그렇게 고지식해서야, 원. 자넨 너무 무거워.”

기준은 자신이 답변할 때마다 머리를 절레절레 젓던 면접관과 노골적으로 안도하던 다른 면접자들을 떠올렸 다. 너는 너무 무거워. 그건 기준의 연인이 기준을 떠나갈 때 했던 말이기도 했다. 성실이 미덕인 시대는 진즉 끝났어. 넌 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래? 기준은 면접관의 말도 옛 연인의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기준이 원하는 건 성실한 삶이었다. 원칙을 지켜 성실히 살겠다는 기준의 신념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기준이 충동적으로 전수관에 갔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인천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그곳에는 원칙과 신념을 지킨 사람들의 삶이 꽉꽉 들어차 있을 것이었다. 전시관마다 우직한 공정을 견뎌낸 작품들이 즐비할 것이었다. 기준은 타고 있던 버스가 문학경기장 정류장에 들어 서자마자 하차 벨을 눌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까지는 두 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기준은 망설임 없이 전수관 안으로 들어섰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안 그래요?”

기준이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언제 다가왔는지 나이가 지긋한 여자가 기준과 나란히 서있었다. 이게 뭐로 만든 건지 알아요? 기준 앞에 전시된 노리개를 가리키며 여자가 물었다. 우윳빛 얇은 판 위에 화려한 색으로 채색된 나비들이 가득한 노리개였다. 코팅이라도 된 것처럼 겉면이 매끈하고 색감이 또렷했다. 조개껍데기 같은 건가요? 자개? 단단한 질감을 떠올리며 기준이 대답하자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소뿔이에요. 소뿔을 종이만큼 얇게 갈아서 그 위에 그림을 그린 거죠.”

기준은 짧고 두꺼운 소뿔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종이만 한 두께로 만들려면 소뿔을 대체 얼마만큼 갈아내야 하는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토록 고루하고 지난한 시간을 버텨냈을 누군가의 신념은 응당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무거워야만 했다. 

“진심은 사라지지도, 변하지도 않아요.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그것만 견뎌내면, 이토록 빛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거예요.”

여자가 기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기준이 오늘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얕게 흩뿌린 비는 금세 멈췄다. 기준은 편의점 출입구를 열어둔 채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바닥 타일 여기저기 흙 발자국이 찍혀 엉망이었다. 기준은 찬찬히 발자국을 지워 나갔다. 타일 틈새에 낀 흙 알갱이들은 일일이 끄집어내 치웠다. 바닥이 다시금 반짝거리기 시작할 때 빗소리가 들 렸다. 아까보다 확연히 굵어진 빗방울들이 우르르 쏟아지 듯 내려오고 있었다. 빗물이 스미기만 했던 도로 곳곳에서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작은 물웅덩이가 순식간에 여기저기 생겨났다. 

“하여튼 성실하다니까. 지금 닦아봐야 금세 더러워질 텐데 헛수고야. 이따 한꺼번에 닦아. 박스나 몇 겹 더 깔아두고.” 마침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던 사장이 기준에게 말했다. 비가 내리고 있는 동안에는 손님들이 드나들 때마다 흙 발자국이 계속 생길 게 뻔했다. 그럼에도 기준은 바닥을 끝까지 닦았다. “젊은 사람이 요령 없기는.” 사장이 낮게 혀를 차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에 면접관이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과 태도라 기준은 잔뜩 어깨를 움츠렸다. 발 매트와 넓게 편 박스를 편의점 문 앞에 나란히 늘어놓았다. 작게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아 기준은 문밖을 내다보았다. 어느 틈에 돌아왔는지 얼룩이가 상자 안에 들어가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머리통이 비에 흠뻑 젖었다. 기준은 마른 수건으로 얼룩이의 정수리와 등 언저리를 닦아주었다.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상자가 놓인 쪽으로도 빗방울이 튀었 다. 기준은 가판대에 세워두었던 비닐우산을 들고 나와 종이 상자 위에 펼쳤다. 축축한 바람과 빗방울이 더는 얼룩이에게 닿지 않았다. 

“발을 털고 들어가야지.”

마침 편의점으로 들어서려던 손님이 앞서가던 일행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밝은 조명 아래 반짝거리는 바닥 타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봐, 얼마나 깨끗한지. 저렇게 정성껏 닦아놓은 걸 아무렇게나 밟아서 되겠어?”

그들은 발 매트와 박스에 꼼꼼히 발을 턴 뒤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아래로는 어떤 흙 발자국도, 어떤 얼룩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걸 보는 기준의 얼굴이 크림색 타일만큼이나 은은하게 반짝였다.






안보윤 | 1981년 인천 출신.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자음과모음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중편소설 <알마의 숲>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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