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모닝인천 Feb 29. 2024

장봉도 ‘욕쟁이 할머니’ 공정업

인천에서 인천으로 | 굿모닝인천 1월 Vol.361

고통도          

행복이다,               

살아있기에



장봉도 바닷가 해식 동굴에서, 장봉도의 ‘욕쟁이 할머니’ 공정업. 살아있기에 살아야 하므로, 그는 오늘도 미지의 세계로 길을 떠난다.



인천은 깊다. 최초, 최고가 공존한다. 그 역사는 인천 사람들이 살아낸 시간이기도 하다. 인천 곳곳에 깃든 저마다의 삶과 기억,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다. ‘인천에서 인천으로’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인천의 삶,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장봉도의 ‘욕쟁이 할머니’ 공정업 어르신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사람인 줄 알았다. 남편과 딸을 가슴에 품고 세계 30여 나라 오지에 발자국을 찍은 뒤 깨달았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삶은 빛난다는 것을. 



일흔넷, 안나푸르나에

오르다

                    “내가 우리나라 재벌 故이건희보다 더 부자야. 히말라야 안나

                    푸르나Annapurna에 올랐으니까.” 한겨울의 장봉도 바닷가, 매서운 바람 모 서리에서 진한 짠내가 묻어난다. 공정업 할머니는 2주 후면 이 섬을 떠 난다. 미지의 북아프리카 대륙으로 가 금빛 일렁이는 사하라 사막 위를 거닐 것이다. 

그의 나이 일흔넷, 놀랄 일은 아니다. 이미 홀로 30여 나라에 발자국을 남 긴 그다. 여행이 아닌 고행길이었다. 인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세상 의 중심에서 뚝 떨어진 오지로 주저 없이 걸어 들어갔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 안나푸르나 정상에도 올랐다. 육체가 아닌 영혼이 이끄는 대로, 열흘 을 걷고 걸은 끝에 높고 푸른 네팔 하늘 가까이에 닿았다. 

할 수 있는 외국어는 오로지 ‘노 잉글리시’, 여행 자금은 마이너스 통장이 대 신한다. “기가 막히지? 나 같은 사람이 세계를 혼자 다니고. 하지만 이래 봬 도 내가 ‘글로벌 페이스’라 어디서든 통해.” 검게 그을린 주름투성이 얼굴에 하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가 겹쳐 지난다. 그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가 사는 세상은 아프도록 남루했다. 젊은 시절,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전 남 고흥을 떠나 소래포구로 왔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달려 검 은 바다에 다다랐다. 새벽빛이 밝아오기 전부터 부둣가로 나가 해가 땅 밑 으로 떨어질 때까지 생선을 팔았다. 몸에 비릿한 바다 냄새가 스며들어 지 워지지 않았다. 남편은 일하지 않았다. 생선 비린내 배인 돈을 흥청망청 쓰 며 매일을 술로 지냈다. 기어이 아내에게 손찌검까지 했다. 두 자식만 아니 면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하나, 슬픔과 분노가 뒤엉켜 달려들지라도 어떻 게든 버티고 살아내야 했다. 어느 날 남편이 “장봉도에서 지주식支柱式 김 양 식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더라”라고 말했다. ‘섬으로 들어가 버리면, 남편 이 지긋지긋한 술을 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30여 년 전, 부부는 여덟 살, 열 살 난 아들딸 손을 붙잡고 바다를 건너 섬으로 흘러들어왔다. 



바다는 생명 줄이다. 바다가 있기에, 그도 오늘 여기 있다.



사랑하는 존재와 

시간의 상실

                섬에서도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고단했다. 김 양식을 하겠다던 남편은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술 만 마시면 아내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아내는 매일 밤 울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퉁퉁 부은 눈을 떠서 보면 이불에 눈물 자국이 아프게 새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살아야만 했다. 어느덧 자식들이 집을 떠나 육지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남부럽지 않게는 못 키 워도 공부는 가르쳐야 했다. 갯벌에 뒤엉켜 억척스럽 게 삶을 일궈냈다.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지주를 세우고 발을 던지고 김을 맸다. 모진 바람과 시린 물 살을 견뎌낼수록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다. “바다는 내 생명줄이야.” 바다가 있기에, 그도 오늘 여기 있다. 


                남편이 죽었다. 그날도 고된 노동으로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섬에서 새사람 만들어 언젠가 는 고향으로 함께 돌아가려고 했는데… 먼저 가버렸 어. 결국 술도 영영 못 끊고 죽어버렸어.” 살아 있을 때 는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 그래서 가슴이 더 사무치게 아팠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무서운 거야. 끊어 내기가 힘들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히는 건 아니다. 그리움이 더 해갈 뿐이다. 가까스로 살아내고 있는데, 남편이 떠나 고 10년 후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그를 집어삼켰다. 눈 뜨고 일어나는 매 순 간,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실감이 그 또한 소멸시켜 버렸다.

‘죽어야겠다.’ 세상 전부를 잃으니 한갓 인생살이쯤은 두렵지 않았다. 먼 길을 나섰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 는 낯선 땅에 자신을 덩그러니 떨어트려 놓고 스스로 를 괴롭혔다. 세상에서 점점 사그라들다 마침내 사라 져 버리기 위해. 



부모는 결코 자식을 가슴에서 지울 수 없다. ‘이제는 딸 잃은 아픔을 지웠다’ 말하면서도,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바다 너머 바다, 그 어딘가에 딸이 있을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더해간다.
할머니의 식당 벽을 채운 여행의 시간.고행길 같은 여행에서 행복을 만났다.



모든 삶은 

빛난다, 


살아 있기에

                갠지스강의 밤이 깊어 간다. 어둠이 짙어 갈수록 강가의 붉은 단 위로 불빛이 강렬히 쏟아져 내린다. ‘아르띠 뿌자Arti-Puja. 촛불로 어둠을 몰아내고 물과 꽃, 바람을 신에 게 바쳐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이다. 남편과 딸을 위해 기도하러 갠지스강이 흐 르는 인도 바라나시Varanasi로 갔다. 강가 화장터에는 죽은 자를 태우는 연기가 끝없이 피 어오르고, 산 자들은 바로 옆에서 죄를 사하기 위해 몸을 씻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껏 내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고 불쌍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물 한 모금 편히 못 마시고, 제 몸 누일 공간조차 없는데도 사람이 살고 있었어. 웃고 있었지. 순간 깨달았어. ‘나는 왜 운명을 이겨내려고만 했을까.’, ‘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죽으려 고 떠난 여행이 그를 숨 쉬게 했다. 

욕쟁이 할머니, 혼자가 된 후로 바닷가에서 작은 식당을 꾸리면서 그리 불리게 됐다. 처음 엔 짓궂은 손님을 만나면 겁부터 나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 내어 거친 말 을 내뱉고 급기야 욕세례를 퍼붓기에 이르렀다. 그가 모진 말을 쏟아내는 건 자신을 지키 려는 것이지, 남에게 상처 주려는 게 아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인정도 배어 있다. “난 육지에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다 행복한 줄로만 알았어. 한데 나보다 험한 일을 겪은 사 람도 많아. 말해주고 싶어. 사는 게 고통일지라도 행복은 온다고. 나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서야 알았어. 지금, 이 순간이 힘든 건, 살아 있기 때문이야. 이 또한 하늘이 준 선물이야.” 

‘삶이 힘든 건, 네가 살아 있기에 / 행복을 아는 건, 네가 살아 있기에 / 불행을 느끼는 것도 네 가 살아 있기에 / 뜻대로 이루지 못하고, 희망을 잃는 것조차 네가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 공정업의 시 ‘살아 있기에’

그에게 삶은 단 한 번도 찬란하게 아름다운 적 없었다. 가난은 고달프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고통스럽게 슬펐다. 하나 번번이 주저앉던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고통의 시간이다. 이제는 안다. 모든 삶은 빛난다는 것을. 지금 여기, 살아 있다는 이 유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