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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Sep 24. 2019

언론은 어떻게 기레기가 되었나

언론 개혁이 시급한 이유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명칭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당시,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무책임한 보도와, 진실을 얘기한 시민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서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만든 언론 보도를 보며 쓰레기 같은 언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자연스레 기레기는 언론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온데간데없고 엄청난 참사를 앞에 두고 선정적 보도를 이어간 언론들은 기레기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현시점에도 조국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 행태는 기레기라는 용어가 여전히 정당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왜 한국 언론은 기레기가 되었을까?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지고 직접적인 원인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찾는 것이 맞다. 전통적 미디어 환경이 다양한 뉴미디어로 급변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일이지만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유독 특이한데, 바로 포털의 절대적 영향력이다.


한국의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은 자체적으로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포털 대문에 노출되는 여러 언론사의 기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냈다*. 대다수의 인터넷 이용자가 포털을 먼저 접속하고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환경으로 인해, 포털 대문에 걸린 기사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고 이는 언론사에 배당되는 수익과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변화하는 포털 대문에 기사가 걸리기 위해 각 미디어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그래서 포털을 언론으로 봐야 하는지는 논란거리이다. 직접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하는 편집권을 행사하여 여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사는 이미 미디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종이매체는 이미 죽었고 방송매체도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거의 모든 독자들이 포털 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환경이다 보니 언론사 기자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민감해지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취재보다는 포털과 검색어에 영합하는 기사를 숨 가쁘게 찍어내느라 바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극적 선정적 내용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도 서슴없이 기사로 찍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조국과 관련된 기사가 백만 건 가량 생산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미디어 환경의 결과물이다. 차분하게 검증하고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검색어 순위에 맞춰 기사를 찍어내어 조회수를 올리는 것에 목을 매는 환경이기에 기레기가 양산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극악스러운 미디어 환경이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이런 환경에서 탈피할 길이 난망한 언론이 냉정하고 분석적인 기사를 심층 있게 보도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벗어나 언론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으니 포털에 목을 매는 언론이 선정적 기사를 남발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정작용을 기대하기도 난망하니, 이런 한국 언론의 총체적 문제는 건전한 사회 감시 및 비판 기능이 실종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조회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 다양한 언론은, 이미 편파 편향적인 신문들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폐단을 가져왔다. 선정성이 난무하는 언론 지형은, 조국의 장관 임명 과정에서 잘 드러났듯 사실 전달보다는 온갖 추측에 기반한 마구잡이식 보도로 문제의 본질을 매우 흐려놓았다. 정말 답답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난망하다는 점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익의 문제가 걸려있고,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언론 통제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 형성을 할 수 있는 매체라는 특성을 가진, 그래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갖춘 미디어를 의미하는, "언론"이라는 단어는, 이제 사망선고를 받아야 할 모양이다.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일찍. 과연 누가 이 문제 많은 언론을 개혁할 수 있을까? 이미 늦었지만 언론 개혁이 사법 개혁만큼 시급하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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