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임명과 언론과 학벌
한 달간 조국 관련 기사가 무려 120만 건에 육박했다. 엄청난 기사량에 비례해서, 이성적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단순한 의혹 부풀리기 내지는 자극적 기사가 다수였다는 점에서 언론은 기레기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언론도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찾자면 "학벌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언론보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초점이 맞춰진 것은 조국 딸의 입시 관련 문제이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부터 고려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다시 부산대 의전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강남좌파의 딸이 어떻게 특혜를 받았는지에 관한 의혹 제기가 대부분이었다. 일반인들은 사모펀드와 같은 생소한 것보다는 자녀교육 문제, 특히 대학입시에 굉장히 민감하고, 이를 잘 알고 있는 언론은 거기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이어간 것이다.
결국 조국의 문제는 진위를 떠나서 자녀의 입시 그 자체였던 것이고, 이렇게 자녀 입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
학벌은 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도 결국 학벌이 근본적 원인이고, 계급 문제도 학벌로 귀결되며, 한국 사회 문제의 대부분이 근본을 찾아 올라가면 학벌 문제이다. 강남 부동산이 인기 있는 것은 명문대 진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통계로 봐도 강남 출신 학생은 명문대 진학할 확률이 훨씬 높다. 이는 계급의 대물림과도 연관되며 따라서 부동산 문제, 계급 문제 등은 모두 학벌주의와 밀접하게 맞물려있다.
스카이SKY로 대표되는 명문대의 학벌주의, 더 좁게는 서울대 학벌주의는 한국 사회를 깊이 멍들게 하고 있다. 과거 신분 상승의 유효한 통로였던 학벌이 이제는 부와 신분의 대물림 수단으로 고착화되면서 사회에 깊은 불신과 젊은이의 좌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더구나 잦은 입시제도의 변경과, 입학사정관제니 학생종합기록부니 하는, 부모의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입시 제도는 한국 사회를 희망 없는 암울한 사회로 몰아가고 있고,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게 만들었다. 신분 상승의 통로가 막혀버린 젊은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나.
조국 장관 임명 문제로 인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입시제도 개선을 지시했는데, 문제의식은 적절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학벌이 존재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학벌 사회를 타파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학벌 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은, 사실 벌써 오래전에 제시되었다. 국공립대 통합안이다.
과거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에서 제시했던 이 방법은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를 통합하여 하나의 국립대로 학생을 모집하고, 각 지역별 캠퍼스를 운용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가칭 "국립한국대학교"에 각 지역별로 부산캠퍼스, 광주캠퍼스 등이 존재하게 된다. 입시는 대략 입학정원 7만 명 정도의 국립한국대학교가 일괄적으로 모집하고, 각 캠퍼스를 특성화시키면, 학생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도 해소할 수 있으며 지역 균형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 국립한국대학교는 유럽 대학 수준인 50만 원 정도로 등록금을 책정하고 기숙사 완비하고, 지금 현재 사립대학에 지원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정부 지원금을 모두 국립대에 투자한다면 높은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학벌주의 사회를 단숨에 타파할 수는 없겠으나, 시작이 반이다. 유럽처럼 고등교육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유럽 대학은 대부분 대학 학비가 거의 무상이다. 통합국립대가 정착되면 지금처럼 서울대로 상징되는 한국의 학벌주의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통합국립대 설립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서울대이다. 지금도 한국 사회 기득권층을 공고하게 점령하고 있는 서울대 출신들은 통합국립대를 반대한다. 서울대라는 학벌을 통해 기득권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이들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국립대 통합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는 반드시 타파되어야 한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얼마나 슬픈 말인가. 더 나은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 작은 행복이나 찾자는 말이니, 너무나 슬프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런 암울한 사회에서 헬조선이라 자조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안쓰럽다.
조국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의 핵심은, 바로 한국 사회 병폐의 근본적 문제인 학벌주의이다. 사법개혁 물론 시급한 문제이다. 언론개혁도 시급하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학벌주의 타파, 모두가 나서서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내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