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술, 남의 술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 기자의 평이 있었다. 맥주의 맛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이 매우 틀려질 수 있으니, 영국 기자의 평은 개인의 기준을 보편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과 동시에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 맥주는 맛없다고 인식하고 있으니 틀린 말이라고 일축해버리기도 어렵다. 문제는, 대동강 맥주도 별로 맛있는 맥주는 아닌데, 한국 맥주는 그보다 더 맛없다는 뉘앙스를 위의 평가가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사실이 아니다.
언급했듯이 맥주의 맛에 대한 평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수제 맥주 바이블"이라는 책을 출판할 정도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맥주 맛에 대하여 주관적 평을 내려도 부끄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기준으로 평을 하자면, 대동강 맥주는 썩 괜찮은 맥주이다. 맥주 시장의 대세인 라거 맥주는 고유의 특징으로 인하여 맥주 맛에 있어서 대단한 차이점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가볍고 깔끔한 청량감이 특징인 라거 맥주이기에 에일 맥주와 같은 다양한 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라거도 브랜드에 따라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맥주가 많다. 라거 맥주인 대동강 맥주는,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 맥주이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카스나 오비와 같은 밋밋한 한국 라거 맥주보다는 대동강 맥주가 더 개성 강하고 맛있다. 라거 특유의 깔끔함을 갖고 있으면서 개성 있는 뒷맛을 보여준다. 이 정도면 훌륭한 라거 맥주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여러 유명 브랜드의 맥주와 비교해서 매우 탁월하다거나, 최고의 맥주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동강 맥주가 한국에서 유통이 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맥주이다.
맥주는 생산된 현지에서 마실 때 가장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산미구엘이나 사이공 맥주도 필리핀과 베트남 현지에 가서 마시면 더 맛있다. 아무래도 유통과정이 길어지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현재 대동강 맥주를 마시는 방법은 한반도를 벗어나서 외국에서 유통되는 맥주를 구해 마셔야 하니, 그 참맛을 맛보기 어렵다. 만일 대동강 맥주가 휴전선을 넘어와서 한국에서 유통될 수 있다면 생산 현지에서 유통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한국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맥주가 되겠다.
맥주의 참맛을 알려면 양조장을 찾아가서 가장 신선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최선이지만, 증류주인 소주는 유통기간에 따른 맛의 변화가 훨씬 덜하기에 어디에서 마시건 비교적 일정한 맛을 유지한다. 외국에서 유통되는 북한 소주인 류경 소주를 예로 들어보면, 대동강 맥주가 남쪽의 카스나 오비보다 더 맛있듯, 류경 소주도 남쪽의 진로나 참이슬보다 더 맛있다.
진로 등의 한국의 소주는 전통적인 증류주가 아니라, 일종의 화학주이다. 그래서 소주 라벨에 보면 희석식 소주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희석식이라는 것은 알코올에 물을 타서 희석했다는 의미이다. 거기에 각종 첨가제를 추가해서 맛을 낸 것이다. 전통적 소주는 쌀을 발효시켜 만들어진 술을 증류해서 만들었는데, 근래 대량 생산되는 소주는 저렴한 재료로 제조한 순도 90% 이상의 에탄올을 희석하고 인공감미료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그러니 한국 소주는 전통적인 증류주와는 차이가 있다. 곡물에서 나오는 특유의 맛이 배제된, 알코올에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여 낸 맛은 증류주와 비교하면 확연히 떨어지는 맛이다. 요즘에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여 전통적인 증류 소주가 생산되어서 그나마 개선이 되기는 했다. 원래 소주는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증류해서 만들어야 하고, 류경 소주는 전통적인 증류주 고유의 맛이 잘 살아있는 훌륭한 소주이다.
일반적인 소주와 맥주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의 술 양조술이 남한보다는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맥주도 소주도 북한 술이 더 맛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자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양조장들이 기술이 부족해서 북한보다 술을 못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경제 논리가 앞서다 보니 맛은 좀 떨어져도 값싸고 잘 팔리는 술, 소위 가성비가 뛰어난 술을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한국 술의 맛이 북한보다 뒤떨어지는 것이다. 자본에 길들여져 고유의 맛과 개성을 잃어버린 것은 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고 있으니, 서글픈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울지 몰라도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북한이 부럽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술에 관한 한 남쪽보다 북쪽의 술이 더 맛있는 것은 사실이니, 술꾼의 입장에서 부러운 일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가 아닌,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최선의 맛을 지향하는 북한의 생산 시스템이 한국보다 확실히 더 맛있는 술을 만들고 있으니, 술의 맛만 따진다면 북쪽의 시스템이 남쪽보다 우월하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다.
맛있는 북한의 술을 정작 지척인 한국에서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은 술꾼에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 술이 유통되면 틀림없이 한국 술에 자극이 되고 맛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할터인데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주당들을 위해서 정부가 전향적으로 결정을 내려서 북한 술을 수입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