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부부 배낭여행기 9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라오스의 도로 사정은 열악하다.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자동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멀지 않은 거리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여행자 버스의 승객은 모두들 여행자들이니 열악한 도로 사정도 문화 체험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이런 열악한 상황도 모두 이해하며 자신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이 어린 서양 여행객이 대부분인 승객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한국 관광객이 점령하다시피 하여 거의 한국 강촌 분위기라고 하던데, 우리가 여행하던 그때의 라오스 방비엥은 서양 젊은 배낭 여행객들의 해방구였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여행자 버스의 승객도 대부분 서양 청년들이다.
서양 사람들의 골격이 커서 그런지 외모로 보면 꽤 나이가 있어 보이지만, 대부분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정도의 혈기방장한 나이 어린 친구들이다. 유럽 출신들이 많은데, 가난한 젊음이 선택할 수 있는 여행지가 제한적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머나먼 동양의 작은 시골 도시까지 여행을 오는 탐험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것 아닐까? 아마도 이들의 유전자에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들 나이 또래의 유럽 청춘들이 먼 옛날 작은 범선에 몸을 싣고 이곳 인도차이나까지 흘러와서 무역을 하고 식민지를 개척했듯이.
버스는 4 시간여를 달려 방비엥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관광지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내렸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숙소를 미리 정해 놓은 승객은 숙소에서 보내준 툭툭을 타고 가고, 정해 놓은 숙소가 없는 우리는 한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했지만, 막 출발하려는 툭툭에 무작정 올라탔다. 미리 구해 본 방비엥 지도 상으로는 버스를 내려 숙소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버스를 내린 곳에서 숙소 밀집 지역까지는, 지리를 알고 난 후라면 걸어가도 무방한 거리였지만, 버스에서 막 내려서 방향 감각도 없는 상태에서 걸어서 찾기란 힘들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툭툭을 잡아 타고 본다. 우돈타니 공항에서 커피 마시고 여유 부리다 낭패를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교통편은 있을 때 무조건 타고 봐야 한다.
지금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당시 지도만 봤을 때는 나름 꽤 번화한 여행자 시설이 갖춰진 곳처럼 보였다. 지도 상에 빽빽이 들어선 이름들을 보면 그렇게 보였다. 도착해 보니 시설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고,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흐느적거리는 서양 젊은이들이 뒤섞여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야릇한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지도에서 빨간 선으로 표시된 거리가 방비엥 최고의 번화가였다. 이 길을 따라서 레스토랑과 숙소가 밀집해 있다. 특히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숙소는 경관이 빼어나서 다른 곳 보다 가격도 더 비싸다. 가격이 비싸다고 해봤자, 대체적으로 20불 안쪽이었으니 결코 비싼 가격이라 할 수도 없었지만.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요즘에는 숙소 가격도 많이 인상되었으리라.
나름 방비엥 도심 번화가에 도착해서 우선 숙소를 찾았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강변 뷰가 뛰어난 숙소를 정해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비엔티안의 현지 발음이 위앙짠이듯, 이곳도 프랑스인들이 Vang Vieng으로 표기하는 통에 방비엥이 되었지만, 현지인들은 왕위안이라고 발음한다.
우리가 처음 묵었던 숙소에서 보이는 전망이다. 아마도 방비엥에서 가장 전망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이런 풍광이 펼쳐지는 숙소라면 가격이 비쌀 것 같지만, 일박에 $18을 지불했다. 하루 이상 묵는 조건이면 더 싸게 흥정할 수도 있었으나 혹시 다른 숙소로 옮길 수도 있으니 일단 일박만 하기로 했다. 바로 옆 집은 전망이 조금 더 좋았고 가격은 $20을 불렀다. 비수기에는 더 저렴하게 묵을 수 있고, 흥정하기에 따라 탄력 요금이 적용된다.
게스트하우스 숙소에는 발코니가 있어서, 발코니에 나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라오스 한적한 시골에 이런 절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니, 역시 세상은 넓고 가봐야 할 곳은 많다. 자연 풍광 단 하나만을 보고 와도 전혀 비용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저렴하기까지 하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늘어지다 보니 어느덧 어스름 석양이 진다. 방에서 보는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넋을 잃고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천국 같은 곳이 있다니, 연신 감탄한다. 아내도 기가 막힌 풍경에 감동한다. 4시간 동안 험한 길 흔들리는 버스에 시달리며 고생하고 온 보람이 있다.
게스트하우스 왼쪽으로 식당 겸 펍이 있었다. 위 사진 왼쪽에 불 켜진 곳이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니 저렇게 불을 켠다. 저곳에서 술 한잔을 하면 기분이 어떨지는 설명 안 해도 사진이 말해주고 있다. 석양을 바라보며 라오스의 명물, 비어라오를 마셔야 한다. 동남아에는 지역마다 개성 강한 맥주가 많지만, 최고의 맥주를 꼽으라면 단연 비어라오를 꼽는다.
한국에도 수입되어 쉽게 맛볼 수 있는데, 라오스 현지에서 마시는 그 맛을 한국에서는 100% 느낄 수 없다. 비어라오는 라오스에서 마셔야 그 참맛을 경험할 수 있다. 식당에서 마시건 가게에서 사서 마시건 가격이 똑같은데, 우리 돈으로 1000원가량에 500ml 큼지막한 병을 준다. 식사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물 대신 비어라오를 마셨다. 술 잘 못 마시는 아내도 라오스에 와서 비어라오의 팬이 되었다.
낮에는 풍광 좋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서양 젊은이들의 방종이 시작된다. 숙소 앞에 섬이 있고, 섬 안쪽에 위치한 펍은 서양 젊은이들이 밤새 술 마시고 파티를 즐기는 곳으로 꽤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밤이 되니 네온이 들어오고 묵직한 베이스 음이 깔린 파티 음악이 시작되었다. 이 아름다운 풍광의 시골 동네가 밤이 되면 광란의 파티장이 된다. 길거리는 온통 술에 취해 흐느적대는 서양 청춘들이 넘쳐난다.
술에 취하고 때로는 마리화나에도 취한 청춘이 한껏 젊음의 자유를 만끽하는 해방구가 되어버린 방비엥은 낮과는 완전히 다른 색의 옷을 갈아입는다. 이들 청춘의 밤은 확실히 우리들 중년의 낮보다 아름다울까? 밤늦도록 이들의 축제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치명적 단점은, 코 앞의 섬이 밤에는 광란의 해방구가 되어 파티 음악이 밤새 이어진다는 점이다. 예민한 사람은 밤잠을 설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숙소에서 바라보는 이 기가 막힌 뷰를 보고 나면 이곳에 짐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다.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과 강은, 다른 모든 단점을 다 덮고도 남는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풍경이다.
매일 저녁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석양을 바라보며 저 풍선을 타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갔을 당시 막 새로 시작한 서비스였는데,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한번 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 타지 않고 방비엥을 떠났다. 돌아보면 아쉬운 일인데, 그렇게 여행지에 아쉬움도 남기고 와야 다음에 다시 방문할 핑계가 생기지 않을까. 예전에 파리를 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노신사 한분이 앉았는데, 유럽 특파원 시절 옛 추억을 곱씹어보기 위해 노년에 유럽 여행을 떠나는 길이라 했다. 우리 부부는 언제 방비엥의 저 석양을 다시 보러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