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부부 배낭여행기 8
배낭여행의 매력은 "자유"에 있다.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 틀에 박힌 패키지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다. 꼭 들러봐야 할 곳 몇 군데만 찍어두고, 대부분은 여유롭게 도시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닌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노천카페에서 늦도록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조금은 오래되어 쇠락하고, 바쁘게 움직이기보다는 조용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도시가 비엔티안이기에 한적한 평안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이 낡은 냄새 묻어나는 도시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 차이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도시라는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정해진 일정이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뜻밖의 장소에도 들어가 본다. 식당에서 나와 걷다 우연히 만난 국립도서관이다. 라오스의 국립도서관에는 어떤 서적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아름다운 프렌치 풍의 건물은 낡았지만 남국의 정취를 흠뻑 품었다. 낭만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책들이 왠지 있을 것 같다. 들어가 본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도서관 입장료는 없다. 참, 자본주의 국가지만 한국도 공공도서관은 입장료가 없구나. 체제를 떠나서 지식의 제공은 국가가 시민에게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이고, 세금을 낸 시민이 당연히 기대해야 할 권리이다.
그런데, 한 국가의 국립도서관인데, 내부의 내용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부녀회가 운영하는 아파트 단지 도서관보다도 책의 종류가 빈약해 보인다. 쓸만한 책을 찾기 어렵다. 책 분류도 어떤 체계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고, 둘러보기도 어렵다.
국립도서관은 그 나라의 지적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시민들을 위해 상당한 정보를 축적해 놓아야 할 장소인데, 그런 면에서 라오스는 도서관에 너무 무심하다. 그럴 여력이 없어서겠고, 이 나라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니 무어라 판단 내릴 수는 없지만, 도서관 사정이 열악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저기 서가를 둘러보다 90년대 초반 DOS 서적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책은 전혀 정보의 가치도 없는 것이고 도서관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쓰레기로 분류해서 처분했어야 하는 책인데, 서가에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에 찍혀있는 스탬프를 보니, 미국의 어느 도서관에서 기증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미국의 그 도서관에서는 책을 폐기 처분하며 기증 형식으로 이곳에 보낸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이런 쓰레기를 이곳에 보낸 미국 도서관도 도서관이지만, 그것을 받아서 정리해서 서가에 꽂아놓은 것이 이곳 국립도서관의 현실이라면 마음 아픈 일이다.
이층에는 어떤 책들이 있는지 올라가 봤더니 모두 행정실이다. 제대로 분류가 되어 있지도 않은, 장서 수도 많지 않은 이 도서관에 관장을 비롯해 사무실은 왜 이렇게 많을까. 아내는 도서관에 관심이 많은데, 열악한 국립도서관 모습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적어도 한 국가를 대표하는 도서관인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니.
거리에서 서점을 찾기 힘들고, 그나마 발견한 서점에서 파는 서적들이 거의 외국인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들인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그것이 라오스의 출판계 현실인 듯하다.
식당이나 카페는 분위기 있고 맛도 있는 곳이 거리 곳곳에 많다. 길을 걷다 발견한 식당에서 먹은 쌀국수 맛이 기가 막힐 때 기분이 좋다. 착한 가격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이곳저곳 많다. 주로 외국인들이 손님으로 오는 식당들이다. 라오스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기에, 프랑스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만을 다닐 수는 없다. 라오스 사람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도 가본다.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식당을 만나고, 맛있어 보이는 곳을 찾아 들어간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식당을 선택하는 것은 주로 아내의 몫이다. 대체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는 맛집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뛰어난 감각과 본능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하여 들어간 식당보다 아내가 선택하여 들어간 식당의 음식 맛이 대체적으로 더 뛰어나다. 희한하게 맛있는 식당을 선별해내는 감각이 있다. 그래서 현지에서 식당을 찾아 나설 때 특별히 정해 놓은 곳이 없을 때는 무조건 아내의 판단에 따른다. 대체적으로 아내의 선택이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
걷다가 더우면 시내 곳곳의 아담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땀을 식힌다. 카페에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라오스가 새로운 커피 산지로 꽤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인이 커피 재배를 하는 농장도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정작 라오스 사람들은 커피를 많이 즐기지는 않는 듯하다. 이웃 베트남 사람들의 커피 사랑이 엄청난 것과 비교된다.
휘적휘적 걷다 보면 아기자기하고 운치 있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열대의 식물들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돋우는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열심히 관리를 한 것 같지 않은데도 어디를 가도 지저분한 곳이 없고 난잡스러운 곳이 없다. 사람으로 치면 조용하게 나이 든 점잖은 노신사와 같은 그런 분위기의 도시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다.
사람이나 국가나 첫인상이 중요하다. 라오스의 첫인상은 첫 방문 도시 비엔티안에서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이 조용한 수도가 마음에 들었고 라오스 사람들에게서도 참 좋은 인상을 받았다. 품위 있는 사람들이다.
비엔티안에서 우리는 숙소를 한번 옮겼다. 여행자들 사이에 유명한 숙소로 옮겨 봤는데, 먼저 묵었던 숙소가 분위기 면에서는 더 좋았다. 옮긴 곳은 규모도 크고 다국적 여행객들로 붐벼서 다양한 정보를 얻기에 용이했고 조식도 조금 더 다양했지만, 약간 번잡스러웠고 방도 좁았고 결정적으로 제대로 된 창문이 없어서 답답했다.
이 게스트하우스 로비는 여행정보센터 같은 개념이어서 이곳에서 다음 목적지 방비엥행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는 두 종류가 있다. 라오스 사람들이 이용하는 일반 버스와, 외국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여행자 버스.
일반 버스를 타면 라오스 사람들과 함께 닭, 돼지 등의 가축들과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 제대로 현지 문화를 알고 싶으면 일반 버스를 타야 한다. 대신 시외버스인 만큼 정차하는 정거장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행자 버스는 외국 관광객을 위한 버스이기에 쾌적하게 목적지인 방비엥까지 논스톱으로 간다. 우리 부부는 여행자 버스를 이용했다.
우리가 탔던 여행자 버스는, 탑승구 계단에 "발 톡톡"이라는 한글 안내 표시판이 있었다. 발 톡톡하고 탄 기억은 없지만, "은혜 장식"의 당부대로 쓰레기를 봉지에 넣어 잘 처리했고 관광문화인의 긍지를 한껏 가졌다. 비엔티안을 출발하여 4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목적지 방비엥에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놓았다.
버스에서 내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 무. 것. 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