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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Jun 29. 2017

옥자,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배급의 새 지평, 그런데 작품으로서 영화 그 자체는?

언론 플레이가 너무 심했다. 영화 자체보다 개봉 방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드디어 영화가 개봉했다. 넷플릭스 가입자이기에 친절하게 넷플릭스에서 메일까지 보내주며 개봉일을 알려준지라, 당연히 개봉하자마자 봤다. 영화관의 빅 스크린이 아닌 노트북 화면에서 봤지만, 그것이 원래 영화가 의도한 시청 방식이니 의도에 충실하게 영화를 본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평범하다. 어쩌면 향후 영화 제작과 개봉 방식을 바꿔버릴지도 모를 새로운 시도의 개척자로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을 선정한 것은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그런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 역량이 있는 감독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논란을 빚은 언론플레이로 인해 한껏 고조된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완성도 높다. 화면은 아름답고 감독의 색깔도 잘 묻어 나온다. 컬트스러움도 살짝 배어있다. 메시지도 명확하다. 다만, 아쉬운 마음 떨칠 수 없다. 캐릭터들이 제대로 깊이를 전해주지 못하고 발전하다가 만 듯한 느낌을 준다. 감독의 전작인 설국열차와 비교해보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튼은 강렬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했다. 짧게 등장했지만 에드 해리스도 자신의 등장 이유를 충분히 합리화시키는 연기와 캐릭터의 깊이를 보여줬다.


옥자에는 역량 있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설국열차에 출연했던 틸다 스윈튼은 물론이고,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스티븐 연, 윤제문 등 뛰어난 역량의 배우들이 제대로 캐릭터에 녹아들지 못했다. 감독의 의도가 너무 읽혀서 캐릭터들이 몰입을 방해했다고 해야 할까. 예컨대 폴 다노의 경우 등장 분량으로 보면 충분히 캐릭터가 설득력 있게 자리 잡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스티브 연을 포함한 ALF소속 모든 캐릭터가 그렇다. 윤제문은 밋밋하기만 했다. 충분히 활용되었어야 할 배우들이 너무 낭비되었다. 가장 빼어났던 것은 미자 역의 안서현이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캐릭터였고 영화를 살린 존재라면 단연 그녀에게 공이 가야 한다. 배우들보다 오히려 컴퓨터 그래픽인 옥자의 연기가 더 자리 잡혀 있다고 할 만큼 다른 캐릭터들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플롯은 설득력 있고 재미도 있다. 메시지도 명확하다. 봉 감독은 괴물, 설국열차 등의 작품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옥자의 메시지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탄생한 슈퍼돼지를 통해 인류가 환경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감동을 주거나 설득력이 크지는 않다. 옥자와 미자의 종을 뛰어넘은 우정은 세세히 설명이 되기에 오히려 주제를 우정으로 본다면 훨씬 설득력 있다. 그렇다고 플롯 자체가 설득력이 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충분히 세심하게 짜여진 플롯에는 별다른 결함이 없다. 다만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조금 부족했을 뿐이다.


누구나 하듯이 별점을 매기거나 하고 싶지는 않다. 넷플릭스 구독자로서 이런 영화를 집에서 편안히 컴퓨터로 볼 수 있었으니 전혀 불만이 없다. 오히려 고맙다. 넷플릭스가 이런 소동을 벌이며 옥자를 만든 것은 틀림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가입하기를 바란 것일 터이고, 아마 한국에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을 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봉준호 감독은 미디어 발달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선을 그은 인물로 기록되는 영광을 누릴 것이고.


종이신문이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듯이, 이제 팝콘을 들고 영화관을 찾는 일이 먼 과거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전자책이 나와도 여전히 사람들이 종이책을 구매하듯, 영화관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옥자가 넷플릭스의 의도대로 영화 배급의 플랫폼을 바꿀 정도의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가 주는 울림과 파괴력이 그만큼 크지 못하기도 하지만, 옥자를 보고 난 후에 이 영화를 영화관 빅스크린에서 봤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이 새로운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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