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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Jun 17. 2017

포르노와 SF, 그리고 프랑스혁명

포르노와 SF가 없었으면 혁명도 없었다

음모론 정도로 치부했던,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경험이 있는가? 요즘에는 한국인들 모두가 경험한 일이겠다. 그때 기분은 참 묘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하며 기가 막히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게 사실이었어? 하는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마치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속의 일들이 갑자기 현실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실이 된 음모론처럼, SF와 포르노 소설이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짜릿하다. 수많은 사람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고, 왕정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출범시킨, 그리고 서구 근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며 수없이 많은 문학 작품의 무대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의 동력이 나온 곳이, 포르노와 SF라니! 


포르노와 SF와 프랑스혁명에 관한 이 주장은 강창래의 저작 "책의 정신"에 나오는 대목이다. SF는 현재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간절한 바람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표현하는 장르이기에 프랑스혁명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의지가 담겨 있었을 것이라 추론한다. 그래서 SF는 당연히 혁명에 기여했는데, 반면 성적인 감정을 일으킬 목적으로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포르노 소설이 혁명의 지적인 기원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얼핏 엉뚱해 보인다. 물론 왜 포르노 소설이 혁명의 기반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타당한 설명이 뒤이어 나온다. 왕이나 귀족이나 농부나 하인이나 섹스는 누구나 평등(?)하게 다 하는 것이니까.


포르노와 더불어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반을 제공할 만큼 지적이고 중요한 장르가 SF인데, 한국에서는 대단히 평가절하 되어 있다. 물론 SF는 포르노 소설만큼 억울하지는 않다. 포르노 소설은 평가절하가 아니라 아예 범죄시 되었다. 마광수나 장정일 같은 작가들은 포르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으니, 그나마 SF는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은 것이라 위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두 작가가 쓴 작품의 본질이 포르노 소설이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도대체 법관이 무슨 자격으로 표현의 기준을 정해서 작가를 단죄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SF 장르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래서 SF에 대한 이런 해석이 반갑다. 사이언스 픽션 Science Fiction, 즉 과학소설이라고 번역해야 할 단어가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번역되는 통에 이 장르에 대한 편견이 고착화되었다. SF라 하면 허황된 공상의 세계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되고 가볍게 받아들이는 장르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다. 그러니 SF가 프랑스혁명의 지적 배경이었다는 구절에 눈이 번쩍 뜨였다.


가벼운 장르가 아닌, 세계사의 흐름을 변화시킨 중요한 모멘텀을 제공한 것이 SF이니 이제 사회적 인식이 변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강창래가 SF를 프랑스혁명과 연관시킨 것은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고 포르노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오랫동안 폄훼되던 장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포르노 소설도 마찬가지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긴 논쟁이 이어져야 하므로 간단하게 다룰 내용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혁명 당시인 18세기에 SF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정도니, SF의 기원을 따지자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다. 언제 장르가 시작되었건, SF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과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다. 예컨대 SF의 효시쯤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만 봐도 SF가 얼마나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또 어떤가. 인류 발달사에 대한 매우 지적인 고찰이고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우화이다.  역사서에서 지루하게 읽고 깨달아야 할 것을 재밌게 풀어내어 술술 읽고 깨달음을 얻게 만드니, 얼마나 걸작인가! 그러니 SF가 프랑스혁명의 주요 지적 기반이라는 주장은 과장이 아닌 깊은 통찰이라 하겠다. 


변변한 SF 작가 한 명 없는 척박한 한국 문단의 현실이 언제나 타파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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