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May 29. 2017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코맥 맥카시 소설이고 코엔 형제가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제목이 특히 와 닿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 자체에 대해 공감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사회적 노인의 기준에는 아직 훨씬 못 미치지만, 노인이 되면 어떠할지를 이해하는 나이는 된 것 같다. 호기심이 떨어지고 신중해진다. 젊을 때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섰었는데, 이제는 생각만 하고 행동은 안 하게 된다. 어느 순간 아, 내가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코맥 맥카시, 매력 있는 작가이다.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작업인데, 코엔 형제가 멋지게 해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인 모스는 총싸움으로 변한 마약 거래 현장을 우연히 발견하고 2백만 달러가 들어있는 돈가방을 챙겨 온다. 잠시 고민이 있었지만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돈을 챙긴 이후, 모스는 마약상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 안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는 모스와 안톤 간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오랜 경험으로 노련한 보안관 에드 톰 벨이 사건의 전모를 짐작하고 모스와 그의 아내 칼라 진을 보호하려 노력하는 과정을 쫓아간다.


그러나 결국 보안관 에드는 모스와 칼라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모스와 안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힘과 판단 능력을 믿는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고 에드는 이들이 벌이는 한판의 처절한 폭력 사태 앞에 철저하게 무력하다. 에드가 은퇴하고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을 보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젊은이들이고 노인들은 오랜 경험으로 상황 파악은 정확하게 하고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관조할 뿐.


원작에서 노인을 상징하는 보안관 에드는 50대 후반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미국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노인은 50대 후반부터 시작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기준은 그보다 훨씬 더 높다.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코맥 맥카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노인을 위한 나라인 것 같다. 물러나서 관조하고 있어야 할 나이의 사람들이 너무 나선다. 그래서 아마도 노인을 위하는 나라는 없다와 같은 작품은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전통인 경로사상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금의 전반적 사회 분위기의 영향이 매우 크다. 이미 오래전 은퇴했을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니까. 결코 보기 좋지 않았고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활력을 잃어버린 사회는, 망해가는 사회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분위기가 바뀌어서 다시금 희망이 보인다. 인터넷의 재기 발랄한 댓글들을 보면,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게 되고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코맥 맥카시의 기준에 의하면 나도 노인이 되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아도 몸의 세포가 말해주고 있다. 욜로(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더 늙기 전에, 그러니까 호기심이 아예 사라지기 전에 뭐든지 미루지 말고 다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