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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Nov 07. 2018

천박한 라스베가스

자본주의의 민낯

멕시코 인근의 미국 주에는 스페인어 지명이 많다. 한때 스페인이 지배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Las Vegas도 스페인어로 초원이라는 의미인데 옛날 스페인 사람이 이곳을 지났을 때 초원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라스베가스는 네바다주가 도박을 합법화시킨 1931년 이래,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번성하기 시작한다. 도박과 환락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는데 그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신 씨티Sin City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타락한 도시의 상징인 소돔과 고모라의 현대판 현신이니, 신 씨티라는 별칭은 딱 적절하다.


마피아와 연관된 도박 산업의 음험한 이미지와 더불어, 돈다발을 흔들어 대며 돈이면 무엇이건 다 가능하다 생각하는 천박한 졸부를 도시의 형상으로 표현하면 딱 라스베가스의 분위기일 것 같다. 백만장자 로버트 레드포드가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100만 달러를 줄 테니 부인과 하룻밤 동침하자고 제안하는 곳의 무대가 라스베가스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도시의 천박한 철학을 이 이상 어떻게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라스베가스의 건물들은 화려하다. 돈이면 무엇이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들이다. 카지노가 들어선 호텔들이 대표적이다. 역사와 전통마저도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전 세계 상징적 건물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마치 패기만만한 신흥 부자 미국이 유서 깊지만 늙은 유럽에게 여봐란 듯 뽐내며 보여주듯이.



라스베가스에는 베니스의 운하와 곤돌라도 있고, 파리의 에펠탑도 있으며,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있다. 무엇보다도 일확천금을 꿈꾸게 만드는 카지노가 있다. 이곳 카지노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라스베가스를 즐기는 동안에는 시름도 잊는다. 누구나 이곳에서 부자가 되는 꿈을 꾸지만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떠난다. 짧은 환락은 결국 환영으로 끝나고, 떠나는 공항에까지 설치된 슬롯머신은 빈털터리 여행객의 마지막 남은 푼돈마저도 탈탈 털어 긁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도시의 천박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물론 최근의 라스베가스가 그렇게 나쁜 도시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환락과 불법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카지노 산업은 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가족이 즐기는 레저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찾는 도시가 되었다. 유명한 CES를 비롯한 각종 컨퍼런스의 도시이기도 하다. 인근에는 그랜드캐년을 비롯한 볼거리도 많다. 후버댐 쪽에서 라스베가스로 넘어오는 도로를 밤에 운전해서 오다 보면, 라스베가스에 진입하는 언덕에 올라서는 순간 발아래 펼쳐지는 라스베가스의 불빛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적 아름다움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전율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도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이미지는 도박과 환락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컨대 라스베가스를 무대로 하는 영화를 보면 대부분 그런 이미지의 도시로 그려진다.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가스에 남겨두고 떠나라 What happens in Vegas stays in Vegas는 유명한 말이 있을 정도이다. 타락한 도시에서 한껏 일탈을 즐기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라고 할까.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남의 부인까지도 돈으로 사겠다는 제안이 결코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천박하고 척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도시에서 돈으로 불가능한 것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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