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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May 24. 2017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기행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집필할 무렵은, 스페인의 전성기가 지나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무렵이다. 스페인의 전성기는 고작 한 사람의 일생 정도의 기간으로 생각보다 매우 짧은 기간이다. 세르반테스가 태어날 무렵 스페인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미지의 세계에 막 발을 내디딘 열혈 청년이었고, 그가 젊었던 시절은 르네상스가 꽃피던 스페인의 전성기였지만, 세르반테스가 노년에 들어섰을 때 스페인도 불치병을 얻은 노인이 되어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이 강국으로 부상하여 전성기를 보내고 쇠락하는 과정을 몸소 겪은 인물이고, 그런 바탕에서 태어난 인물이 "돈키호테"이다.


스페인은 오랜 기간 아랍의 지배하에 있었고 유럽으로 인정받지도 못한 국가였다. 세르반테스의 스페인은 알함브라 궁전이 건설되고 나서 한참 이후의 얘기고,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이 800여 년간 아랍의 통치를 받던 시기에 건설된 아랍 궁전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요새"라는 뜻이다. 스페인에 존재하는 "알"로 시작되는 지명은 대부분 아랍어에서 온 것이다. 이 성이 붉은 요새로 불리는 이유는, 대체적으로 성의 색깔이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라는 유력한 설이 있고, 그라나다 왕국을 창시한 나스르가 붉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지금 현재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아랍계 그라나다 왕국이었는데,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인 나스르 궁전은 나스르 왕조의 황금기였던 1333년에서 1359년 사이에 건설된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몇 개의 섹션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크게 군사요새 알카사바와 궁전의 내실인 나스르, 그리고 헤네랄리페 3구역이 있다. 이곳은 군사요새인 알카사바의 탑이다. 이곳에 서면 발밑에 그라나다 시내 전경이 펼쳐지고, 저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만년설이 눈에 들어온다. 알함브라 궁전의 외관은 정말 수수하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명성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외관에 실망이 적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온 곳인데 말이다.

성곽에서 내려다본 그라나다 시내의 모습이 볼만하다. 그라나다 구시가지는 미로 같은 골목길로 이뤄져 있는데, 북유럽 쪽과 확연히 다른 면모를 갖고 있어서 색다르다.

외관을 보고 느낀 실망감은, 나스르 궁전의 내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감탄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남장한 여자처럼 내면의 섬세함과 다정함을 애써 무뚝뚝한 외면으로 감추고 있다"라고 설명한 글도 있는데, 직접 가서 보면 매우 설득력 있는 표현이다. 밖을 소박하게 하고 안에 정성을 쏟는 것이 아랍문화의 특징이고, 이런 문화적 전통이 고스란히 알함브라 궁전에도 구현된 것이다. 섬세한 조각에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이다.

이곳의 이름은 "파티오 데 아라야네스." 알함브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사진이고, 같은 각도에서 잡아봤다. 폰으로 촬영했는데도 포스터에 나온 사진과 흡사하게 찍힌다. 실물로 봤을 때의 아름다움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랍 성의 특징이 "물"인데, 연못에 투사된 건물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랍문화 특징인 분수가 도처에 있다.

파티오 데 레오네스, 즉 사자들의 파티오. 아름다운 곳이지만, 역사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이건 왕궁은 처절한 권력투쟁의 장이고, 피비린내가 배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의 잔혹한 살인극을 계기로 그라나다 왕국은 급격하게 몰락하고,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슬람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아랍문화권에서는 종교적인 영향으로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건물의 장식은 기하학적 무늬로 이루어진다. 아랍 궁전들에서 인물화를 볼 수 없고 섬세한 기하학적 무늬의 극치를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왕이 일상을 탈출하여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의의 문. 관광객들은 이 문을 못 보고 나올 가능성이 큰데, 표를 사는 입구에서 시작해서 한 바퀴를 돌아서 헤레랄리페를 거쳐서 다시 입구 쪽으로 나오게 되면 이 문을 못 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알함브라의 상징적인 게이트이다.

옛 아랍상인들이 형성했던 그라나다 구 시가지의 유명한 시장거리, 알카이세리아. 비단이 주로 팔리던 상점들이 모여있었다는데, 요즘에는 물론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만한, 매우 인상적인 좁은 골목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서, 이 미로 같은 구시가지에서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가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스페인을 꼽는다. 우리와 비교적 비슷한 정서가 있어서, 정이 많이 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유럽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견 수긍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유럽과는 매우 틀리기 때문이다. 


아랍의 문화와 전통이 유럽의 가톨릭 문화와 뒤섞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문화가 있는 곳이 스페인이다. 특히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스페인의 이미지인 "정열의 나라"라는 표현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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