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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May 25. 2017

파리 지하철 단상

파리 지하철 이용기

파리는 이런저런 일로 자주 들러서 꽤 익숙하고 친숙해진 도시인데, 그날은 지하철 표를 사려다가 갑자기 망연해졌다. 도대체 스크린이 눌러지질 않는다. 계속 스크린을 두드리다 난감해져서 옆 기계에서 표를 사던 파리장을 곤혹스레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 친구, 싱그레 웃으며 도와준다. 표가 나오자 프랑스인 특유의 커다란 제스처와 함께 "Voila~" 표를 건네준다. 


터치스크린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버튼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번에 파리 왔을 때는 표 잘 사서 다녔었는데, 아마도 아이폰과 아이패드 후유증인가 보다. 폰을 꺼내 들고 지하철 표 자판기를 찍었다. 혹시 나중에 행여나 또 헤매지 말라는 예방차원에서.


이것은 터치스크린이 아니다. 스크린을 터치하지 말고, 밑에 바퀴를 굴려야 화면이 바뀐다.


바퀴를 굴려 원하는 티켓을 선택하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불어는 모르지만, validez acceptez 등의 글자를 보면 대략 확인 버튼이라 짐작을 할 수 있다.


지하철 티켓은 1장 가격이 1.7유로이다.  파리의 지하철은 Zone별로 요금이 틀려진다. 우리 지하철도 구간별로 요금이 틀려지듯이 파리 지하철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시내 관광지는 Zone 1에 위치해 있기에 1.7유로 티켓으로 갈 수 있다. 라데팡스로 가려면 Zone 2가 되어 요금이 오르고, 베르사유는 더 비싸진다.



베르사유 궁전을 가려면 지하철이 아닌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한데 몽파르나스역에서 타면 된다.

몽빠르나스역

우리가 터미널이라고 하는 곳은 문자 그대로 "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기차가 끝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곳을 의미한다. 유럽 대부분의 기차역 터미널은 저렇게 기차가 끝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되돌아 나간다. 


파리에서 메트로 Metro라 불리는 지하철은 건설된 지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확 풍긴다. 좁고 답답하고 다소 너저분한 터널을 지나서 가면 구닥다리 지하철을 만난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우리 지하철처럼 70년대가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건설된 정말 오래된 터널이라는 의미이다.

오래된 지하철 통로. 이 정도면 꽤 넓은 축에 속한다. 더 좁은 지하철 통로가 많다. 파리의 지하철 전동차는 많이 낡았다. 플랫폼도 낡았다.

지하철 승객들

지하철은 어디나 서민의 발이다. 대도시 지하철은 고단한 삶을 사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고 어느 나라를 가도 지하철 군상은 그래서 비슷한 모습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 지하철이다.



전동차는 모양이 제각각 틀린데,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전동차도 있고 출입문에 이렇게 손잡이가 달려있는 전동차도 있다. 열차가 정지하면 손잡이를 돌려서 문을 열어야 한다. 당연히 자동으로 열릴 것을 기대하고 멍청하게 문 앞에 서 있다가는 내리지 못하고 그냥 열차가 떠난다. 한국 지하철에 습관 들어 있기에, 뻔히 알면서도 종종 문 앞에 서서 문 열리기를 멍청하게 기다리다가 퍼뜩 정신 차리고 손잡이를 돌려 가까스로 문을 열고 내린다. 







파리 지하철은 탑승할 때만 표를 내고, 내릴 때는 그냥 내린다. 그래서 몇 번 지하철을 이용하고 나면 사용한 표가 주머니에 몇 장씩 굴러다닌다. 어떤 표가 새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기에, 사용한 지하철 표는 그때그때 버려줘야 한다.

내가 파리 지하철에서 가장 탐내고 좋아하는 것은, 바로 저 지하철 표시판이다. 어쩜 저리도 주위 경관과 앙증맞게 어울리면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지! 이것이 문화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디자인 감각은 한숨이 나오지만 다 그것도 우리 사회 역량의 결과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서 최근의 디자인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지긴 했다.

유럽 지하철을 타본 사람들은 이구동성 한국 지하철의 우수함을 칭찬하는데, 물론 나도 수긍한다. 우리 지하철은 편리하고 깨끗하고 지하철 망도 구석구석 잘 갖춰져 있다. 현대적이고 최첨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럽 지하철, 특히 파리 지하철은 우리 지하철보다 더 친근한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허름해서이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만큼 최신 시설을 따라 하기도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허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굳이 불필요하게 거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좋다. 비좁고 약간 지저분한 느낌도 들지만, 기본적으로 친근하고 편리하다. 한국처럼 지하 깊이 내려가지도 않고, 환승하는데 멀리 걸어가지도 않는다. 깊지도 않고 환승도 짧아서 버스 타는 느낌이다. 거미줄처럼 잘 얽혀있어서 매우 편의성이 높기도 하다. 


사실 지하철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서 오래된 것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새것보다는 빛바랜 오랜 시간의 흔적이 있는 것들에 더 애착을 느낀다. 그래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풍기는 오래된 파리 지하철이 더 친근한가 보다. 


예외가 있는데 새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천공항은 전 세계 최고 공항임에 이의가 없다. 샤를 드골이나 히드로 같은 공항을 갔다가 돌아와 인천공항에 내리면, 익숙한 친근함을 공기에서부터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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