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May 25. 2017

몽파르나스의 카페

파리와 카페 문화

파리에 올 때면 가격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이곳저곳에 숙소를 잡아봤었다. 외곽 쪽도 묵어보고 했는데, 종국에는 몽파르나스 지역에 머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지역 호텔비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교통도 편하고 무엇보다도 인근에 많은 카페가 있어서 파리의 정취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로 유명한 파리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몽파르나스 지역의 카페들이다. 아니, 파리가 카페로 유명해진 것이 몽파르나스의 카페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예술가들이 몽파르나스로 옮겨오기 시작하고 지하철역이 개통하면서 Vavin가 일대의 카페는 "카페 문화"를 꽃피운다. 그중에서 특히 La Rotonde, Le Dome, Le Select, La Coupole 등의 카페가 유명했고, 이들 카페는 지금도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몽파르나스 일대가 카페 문화를 꽃피우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값싼 렌트비와 자유로운 예술적 분위기를 찾아서 이곳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장 콕토는 "몽파르나스에서 가난은 사치다 (poverty was a luxury in Montparnarsse)"라고 말했을 정도로, 가난하지만 예술혼이 불타는 젊은 영혼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전 세계의 재능이 당시의 몽파르나스에 모여들어 카페 문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도 몽마르트르에서 이곳 몽파르나스로 옮겨왔고, 장 콕토, 샤갈, 에즈라 파운드,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사뮤엘 베켓, 헨리 밀러, 드가, 헤밍웨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가, 조각가, 작가, 시인, 작곡가, 사상가들이 이곳에 모여 카페에 죽치고 앉아 토론과 이야기로 카페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이곳의 분위기는 개방적이고 열려있어서 누구라도 이곳에 와서 쉽게 어울리고 그들의 문화에 젖을 수 있었다. 일례로 1910년경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몽파르나스로 무작정 건너온 일본 화가 후지타는 도착한 지 며칠 만에 피카소, 모딜리아니, 그리고 마티스와 절친이 된다. 영국에서 갓 건너온 Nina Hamnet은 몽파르나스 도착 첫날 La Rotonde에서 옆자리의 남자가 다가와 "화가이자 유대인 모딜리아니입니다 Modigliany, Painter and Jew"라고 소개하자 그날로 친구가 되었고, 곧 피카소와 장 콕토와도 친구가 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토론하던 카페 로통드

그들이 밤새 놀았던 카페 중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La Rotonde인데, 이곳 주인장은(Victor Libion) 당시 배를 곪던 가난한 무명 화가들에게 종종 외상으로 식사와 커피를 제공했다. 가난한 화가들은 밥값을 갚을 때까지 그림을 맡겨두곤 했는데 물론 찾아가지 못한 그림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중 많은 그림이 훗날 엄청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지금도 이 카페 벽에는 모딜리아니 등 당시 그런 식으로 기증받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물론 진품은 따로 보관하고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모조품이다.

건너편의 Le Dome도 이들 예술가들로 붐볐던 카페인데 조금 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로통드나 르돔 모두 이제는 관광객들만이 죽치고 앉아서 붐비지만, 그래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몽파르나스에 오면 가끔 라 로통드에서 밥을 먹는데, 예전의 그런 분위기는 이제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아직 라 로통드는 파리의 인텔리들이 종종 들러서 밥 먹는 곳이라 한다. 그나마 옛 분위기를 아직도 약간은 간직한 곳이라고 해서 여유가 되면 한 번씩 들러본다.


La Rotonde는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사상가들의 토론장이기도 했는데, 특히 레닌과 트로츠키, 러시아에서 망명한 볼셰비키들이 여기 단골이었다고 한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바로 이 카페의 2층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래저래 유명한 역사적 장소인 라 로통드이고, 또 미슐렝 가이드에서 꽤 좋은 평을 받은 식당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미슐렝가이드를 직접 확인은 안 해봤다)


지금이야 모두 다 상업주의이고 관광객들만 넘쳐나지만, 그래도 한때 이곳에 넘쳐흘렀을 자유분방함과 예술혼과 뜨거운 열정을 생각하며, 파리에 가면 늘 몽파르나스를 찾아가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지하철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