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기행
젊을 때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걸어서 올라왔던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젊었기에 걸었을까? 아님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걸었을까? 시간이 많아서 걸었던 것은 결코 아닐 텐데...
하여간 걷건 어쨌건 요즘에는 파리를 구경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여서, 씨트로엥의 고전적 명차(?)인 2CV를 타고 구경하는 방법도 있다. 젊은 연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양인데, 마침 사끄라께 성당 앞에서 이 투어를 하는 연인을 만났다. 가격을 찾아보니 1시간 30분 파리 시내 투어에 일인당 90유로. 싸지는 않다. 나름 클래식 카인 이 자동차의 최대 장점은 지붕이 완전히 열린다는 것! 운전석에서 뒷좌석까지 천정이 천으로 되어 있고, 젖히면 오픈카가 된다.
낭만적인 몽마르트르 언덕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는다면 매우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냥 관광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수없이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짜증이 날 정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슨 고전적 낭만을 기대했다가는 엄청 실망할 것이다. 아예 그런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넘쳐흐르는 관광객들 틈에 있다 보면, 저 그림 그리는 화가들에게서 어떤 낭만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건 생계이지, 예술도 낭만도 아니니까.
몽마르트르가 유명해진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젊고 가난하지만 실험적인 예술가들이 이곳, 그러니까 프랑스어로 La Butte de Montmartre라고 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고호, 마티스, 드가, 르누아르,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예술활동을 한 대표적 화가들이다.
맨해튼의 소호가 그렇고 한국 홍대 앞이 그렇듯이,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낙후된 지역을 예술적 향기로 채우고 나면 부동산값이 오르고, 결국 예술가들은 쫓겨나고 그곳에 상업주의가 자리 잡는다. 몽마르트르는 그런 젠트리피케이션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래도 그 당시 젊은 영혼을 불사르던 예술가들이 찾던 카페가 아직도 그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름 프랑스적 자존심이라고 할까? 프랑스 정부에서 그런 유서 깊은 카페를 문화재로 지정해서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게 하고 옛날 유명 화가들이 앉던 테이블이나 의자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하니 왜 파리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는지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몽마르트르의 유명 명소, 사끄라께 성당은 그야말로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 마침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관리인들이 돌아다니며 "쉿~" 관광객들을 끊임없이 조용히 시키고 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미사를 지켜봤던 것은 결코 미사 분위기에 경건한 마음이 들어서는 아니다. 지친 다리를 쉬고 싶었는데 마침 미사를 드리고 있으니 구경도 할 겸 다리도 쉴 겸 눌러앉았다. 핸드폰 사진을 찍다가 사진 찍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으나, 주위의 온갖 국적의 관광객들이 그런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지각하게 플래시까지 터뜨리는 터라, 죄의식은 전혀 들지도 않았다.
가운데 신도들이 앉아야 할 자리는 오히려 많이 비어있고, 주위의 복도만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그나마 앉아있는 사람들도 신도라기보다는 나처럼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관광객들 이리라. 화석화된 이들 유럽 성당은, 이제 관광객의 카메라를 위해 존재한다.
언젠가 누군가가 서양 종교, 특히 천주교를 제의 종교라고 했는데, 수긍한다. 경건한 의식이 중요시되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전성기 시절 최대의 공을 들여 건축한 이 엄숙하고 장엄한 신전에서 울려 퍼지는 수녀들의 성가는, 아무리 신심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저절로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으나, 몽마르트르 언덕의 번잡한 상혼에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는 비교적 충분했다.
관광지의 많은 성당들이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나, 사끄라께성당은 받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노트르담도 받지 않는다. 다만 탑에 올라가는 것에는 돈을 받지만. 유명한 우리나라 사찰들도 입장료를 받지 않으면 어떨까. 입장료를 받으면 왠지 종교의 품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