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Ale Oct 12. 2017

아이 앰 히스 레저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간 천재에 대한 기록

엉뚱하지만, 그가 게이인 줄 알았다. 아마도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연기 중 최고라고 찬사 받는 작품은 배트맨의 조커 역일 것이지만, 역시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작품은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고백컨데, 배트맨에서의 조커 역할이 기념비적이긴 하였지만, 배트맨 시리즈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 히스 레저는 언제나 브로크백 마운틴의 게이 카우보이로 기억된다. 


아이 앰 히스 레저는 불꽃같은 삶을 살고 간 배우, 히스 레저의 짧지만 강렬했던 생에 대한 다소 어수선한 기록이다. 어수선한 기록이라는 표현은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았건 홈 비디오로 촬영된 많은 장면들이 사용되면서 화면이 상당히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뷰 장면의 촬영과 편집에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다큐멘터리가 반드시 진부할 필요는 없고,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홈 비디오의 거친 장면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삽입되었겠지만, 그리고 히스 레저 본인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생각해볼 때 적절한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조금 더 정리되었으면 좋았겠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사소한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서 본다면, 영화는 28년이라는 짧은 생에서 누구보다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재능 넘치는 삶을 살고 간 배우의 모습을 잘 포착하여 보여준다. 주변 인물들의 회고담, 즉 그와 절친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히스 레저의 모습은 매우 생생하게 살아있다. 짧은 인터뷰의 편린들이지만, 그가 가졌던 재능과 매력을 충분히 전달해 준다. 나오미 왓츠, 이안 감독 등 유명인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증언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히스 레저가 생전에 촬영했던 비디오와 사진, 그가 감독한 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의 연기가 아닌, 히스 레저의 평상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비디오는 실제 생활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관객들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영상의 조각들이 한 사람을 온전히 표현해 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지만, 그가 가진 퍼스낼리티의 진수를 어느 정도 담아내고 있다.


다큐멘터리 필름에 자기 자신으로 나타난 히스 레저는 짧은 시간 동안 불꽃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순식간에 스러진 천재 연기자임을 보여준다. 배우란 후천적인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난 자질이 있어야 가능하다. 배우뿐 아니라 인생 모든 분야가 그렇긴 하지만. 배우는 특히, 외모, 목소리, 몸, 감성 등 전적으로 타고 태어난 자질 없이는 불가능한 직업이다. 히스 레저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태어나 정말 짧은 순간 더없이 밝게 빛을 발하고는 사라졌다. 그 과정을 영화는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영화를 보고 나면 그가 타고난 천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사랑하고 베풀어 준, 매우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영화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물론 그런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사랑받았고 훌륭한 연기로 매력이 발산된 것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게이 카우보이의 이미지에 갇혀있던 히스 레저라는 배우의 다른 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리고 그가 겨우 28살에 죽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그가 보여준 연기의 폭이 매우 넓었기에 그가 그렇게도 어린(?) 나이에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나 짧은 생을 살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누구보다 밝게 세상을 비춘 탁월한 연기를 보여줬다. 


한 사람의 일생을, 그것이 길건 짧건 상관없이, 영화 한 편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이라면 파편적인 기록들과 사람들의 기억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짜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위대하고 천재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요절한 배우의 진정한 내면까지 담아내리라는 기대는 접어두자. 하지만 그가 살았던 삶이 직접 촬영한 거친 홈 비디오와 사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 기록되었으니,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물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트렉 완벽 가이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