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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May 12. 2018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순수의 시대 끝무렵, 마이너 청춘의 반란과 자본주의의 민낯

키워드: #자본주의 #경쟁 #소외 #마이너 #프로 #아마추어 #학벌 #계급 #인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벌써 출간된 지 십수 년이 지난 책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1982년 인천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갓 중학생이 되었고, 때마침 그해 출범한 프로야구의 인천 연고 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한 청춘의 성장기를 빌어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담고 있다.


80년대 청춘을 보낸 사람에게 이 소설은 각별하다. 동시대를 살았고 더구나 인천이 고향인 사람에게는 삼미 슈퍼스타즈와 익숙한 풍경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남다르게 각별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렀고,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잊힌 상징으로 남았지만, 짧았던 존재에도 불멸(?)의 기록을 남긴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인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소설은 특히 인천사람들에게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1982년은 어떤 해였던가! 첫 장부터 소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을 들춰내 되살린다. 그해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중고생 두발 자유화와 교복자유화가 시행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게 만든다. 우순경, 이철희 장영자 부부, 그리고 김득구와 레이 '붐붐' 맨시니 등, 잊혔던 이름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든다. 빛바랜 사진앨범을 넘기는 듯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82년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론 당연히 프로야구가 창단된 해로 기억될 것이고, 평범한 한국의 소년 치고 그때 프로야구에 열광하지 않은 아이는 없었을 터이니 동시대를 살았던 청춘에게 1982년은 특별한 해일 수밖에 없다. 


1982년 주인공은 중학생이 되는데, 중학교에 진학하는 나이인 12살은 저자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음이 분명하다.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이고 곧 이제 시작될 치열한 경쟁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에 나타난 것처럼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개발이 아니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뺑뺑이였지만 전통의 명문 중학교에 배정된 주인공은 아버지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학벌에 따른 계급사회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아버지는 굳이 "엘리트" 교복을 맞춰주고 자신의 모자란 학벌 때문에 도다리가 아닌 아나고회를 사줄 수밖에 없음을 내비치며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 당위가 되어버린 것은, 어이없게도 뺑뺑이로 우연히 배정된 학교가 전통의 일류 중학교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학벌의 중요성을 주인공은 깨닫게 된 셈이다. 


그리고 그해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프로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p. 49) 


주인공과 절친 조성훈은 인천 연고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결성하지만, 패배의 신기록을 세운 삼미는 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주인공은 프로세계의 냉혹함을 체험하게 된다. '부평은 거의 서울에 가까우니까'라는 변명을 남긴 친구는 서울 연고팀 MBC 청룡 팬으로 변절을 한다.(예나 지금이나 부평은 인천이 아니다. 작가는 인천사람이 아님에도 인천 사람들의 정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렇게 한두 명씩 친구들은 모두 변절하고 주인공과 조성훈은 소외된 마이너의 비애를 처절하게 맛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프로를 찬양하는 복음들로 넘쳐흐른다.(p.77)


1983년 불세출의 투수 장명부를 일본에서 영입한 삼미는 기적을 일구며 82년과 정반대의 신기록을 수립하여 잠시 주인공과 조성훈에게 희망을 맛보게 해주지만, 결국 그 이듬해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1985년 6월 21일, 삼미 슈퍼스타즈는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이 경기를 끝으로 주인공은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기로 작정한다.

 

지금껏 평범한 삶으로 인정받았던 삶은, 바뀐 프로의 세계에서는 최하위 꼴찌의 삶이 되었고, 열심히 노력한 삶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중간밖에 되지 못한다. 죽어라 노력한 삶만이 인정받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를 인정한 것이다. 신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냉정한 경쟁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모든 용품을 정리한 주인공은 일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한다. 자신의 소속이 삶을 바꾼다는 프로 세계의 원칙을 충실히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 결실을 맺을 때, 아주 잠깐 혁명을 꿈꾸기도 했으나 혁명의 주체가 되리라 생각했던 서민층과 중산층이, 실은 그 지층이 더욱 다져지길 원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희망을 접는다(p.139).


1988년 주인공은 드디어 일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다시 서울과 지방으로 출신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것을 경험하고, 출생이 삼미 슈퍼스타즈와 같은 마이너인 그는 내내 소외감을 느끼다가 홍대 앞으로 하숙을 옮기고 그곳에서 비로소 위안과 소속감을 찾게 된다. 마치 삼미 슈퍼스타즈와 같이 인생을 즐기고 타락한(?) 풍류 분위기가 있는 홍대 문화에 주인공은 푸근하게 안긴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익숙한 청춘의 표상들, 레드 제플린, 도어스, 재니스 조플린, 그리고 둘리스는 주인공이 빠져든 표상이고, 더불어 핀토스 청바지는 그의 소속을 상징하고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하여 청보 핀토스로 이름을 바꾼 청보에서 만든 청바지가 핀토스 청바지이다. 


그리고 그는 레드 제플린의 락앤롤을 흥얼거리다가 첫사랑을 만난다 (여기서 락앤롤은 장르가 아니라 곡명이다). 술에 취해 길거리에 방뇨하다 쓰러진,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 파트너를 가진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순수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방관해야만 한다. 마지막 순수를 불태운 그녀는 결혼으로 자본주의에 투항하고, 주인공의 군입대와 더불어 청춘은 끝난다. 곧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주인공이 좋아해서 놀림감이 되었던 둘리스의 음악이 아니라 레드 제플린의 락앤롤과 더불어 첫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상징적인데, 대중음악이 상업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것은 레드 제플린의 몰락과 함께 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국,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거듭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p.199)


입대하기 전 주인공의 대학생활은 8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 대부분 겪었을, 혹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삶이기에 더욱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성적 감수성이 바뀌어서 홍준표에게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붙여주게 되었지만, 80년대 대학생들의 자취방에서 돼지발정제는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꽤나 보편적인 이야기 주제였다. 왕성한 성욕을 주체할 길이 막막했던 비루한 수컷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 주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돼지발정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먹은 자본주의라는 발정제는 5분 후에 효력이 나타날 것이고 그 후에는 맥없이 약효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체제에 편입된 주인공의 청춘은 끝이 났고 대기업 엘리트 사원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부속품으로서, 자신은 프로라는 세뇌에 길들여진 강박관념을 갖고 정신없이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데드볼을 맞았다는 것을, 주인공은 IMF시대를 맞아 정리 해고당하면서 깨닫게 된다. "내가 퇴출된 회사의 구조는 놀라울 만큼 튼튼한 것이었고, 놀랍게도 나는 그 구조물의 일부가 아니었다."(p.224) 일류대라는 갑옷과 노력이라는 무기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 곧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그는 실직을 하고, 이혼을 하고, 자신이 고작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던 친구 조성훈에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조성훈의 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 실체를 밝힌다. 곧 착취는 고통스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요란한 박수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p.253)


그리고 이들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결성한다. 이들에게 삼미 슈퍼스타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자가 아니라 거대한 흐름에 저항한 반란군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팬클럽임을 자임하는 이들은 더 이상 낙오자가 아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곧 주인공이 아내에게 이혼당할 정도로 정신없이 살면서 팔았던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 곧 자신의 삶을 팔았던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은 이 사실을 깨닫고 그런 삶을 거부한 사람들이다.


소설이 발표된 2003년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신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시점이다.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고도성장을 통한 경제기적을 이루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경제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전통적 가치가 급격하게 해체되던 시점이다. 그 과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부작용은 여전하다. 순수의 시대가 끝나고 속물의 시대(!) 초입의 최전선에서 격렬한 변화를 몸으로 겪어야 했던 주인공을 통해 산업사회, 곧 신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치열햔 경쟁사회의 모순점에 대한, 그리고 그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비루한 삶에 대한 자학적인 보고서이기도 하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반란에 성공한 것일까? 관점에 따라 다르겠다. 짜여진 체제 안에서 길들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은 결코 가입할 수 없는 환상 속에 존재하는 클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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