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힘과 매력
1968년에 개봉한 영화, Planet of the Apes를 다시 보았다. 걸작은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60년대에 제작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세련되었고, 동시에 묵직한 주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최근에 새로운 시리즈로 다시 제작되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원작이 갖는 매력과 무게는 최근 리메이크작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 개봉 시 원래 제목은 혹성탈출이다. 이후에 혹성이 잘못된 일본식 용어라는 비판으로 인해 행성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행성보다는 혹성이 용어의 정확성과 무관하게 보다 더 매혹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사이언스 픽션이니 과학적으로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이 맞겠지만, 어차피 원제와는 무관한 제목인데 첫 개봉 시 사용한 혹성탈출이 제목으로 제격이다. 케이블에서 방영할 때 제목도 혹성탈출이었다.
머나먼 행성으로 가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우주인들을 태운 우주선이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고, 살아남은 세명의 우주인들은 이 행성을 지배하고 있는 원숭이들에게 사로잡힌다. 인간은 열등한 동물로 원숭이들에게 사냥당하고 동물원에 갇혀있는 신세이다. 우주인 테일러는 자신이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테일러를 도와준 침팬지 과학자인 코넬리우스와 지라는 유인원의 문명 이전에 발전된 다른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한다. 이들의 도움으로 테일러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지구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무너져 내린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테일러가 인류를 저주하며 땅을 치고 오열하는 장면은 기억에 오래 남는 명장면이다.
사이언스 픽션 영화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영화는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여럿 던지고 있다. 영화 제작 당시가 냉전으로 인한 핵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던 시절이라, 인류의 호전성에 대한 경고를 우선적으로 던지고 있다. 테일러가 외계 행성에 불시착했다고 생각한 그곳은, 인류의 핵전쟁으로 문명이 말살되고 원숭이가 지배하는 사회가 된 지구이다.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바로 엔딩 장면인 자유의 여신상 씬이다. 어리석은 인류가 기어코 파멸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테일러는 dame you를 연발하며 오열한다.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비유는 영화 내내 원숭이들의 입을 빌어서 강조된다. 원숭이에 비해 하등 나을 것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테일러가 내세우는 인간의 지혜나 능력은 결코 원숭이들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영화에서 그려낸 원숭이 사회는 인간 사회의 판박이이다. 권력과, 차별과, 편견과, 폭력성이 고스란히 원숭이 사회에서 드러난다. 심지어 어른들의 타락한 욕망과 비열한 속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테일러는 지라의 어린 조카에게 "30넘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까지 남긴다.
종교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고 있는데, 진화론을 주장하는 젊은 학자를 마치 종교재판을 방불케 하는 청문회장에 세우고 벌어지는 일련의 수사들은 종교가 야만적으로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결말 즈음에서는 그런 종교는 인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태동되었다는 암시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1968년도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원숭이 분장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놀라운 반전은 이 영화가 개봉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하게 된다. 걸작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